Drawing Blue #05
일상의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반복되는 익숙한 하루임에도 항상 숨이 차올랐다.
그래서 제주에서만큼은 느긋한 여행을 하고 싶었다. 먼 거리의 이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곳은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 걸어가기로 했다.
걷는 여행에 캐리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싫어서 25리터 크기의 배낭 하나에 옷가지와 세면도구, 그리고 소중한 그림도구들을 넣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림 도구들도 좋아졌다.
그림 여행을 위해 옛날 무성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무거운 이젤과 큰 팔레트를 챙겨 갈 필요가 없어졌다.
기본적인 드로잉 도구들은 모두 필통 안에 있다.
여러 자루의 연필과 펜, 샤프펜슬, 그리고 몸통 부분에 물을 담을 수 있어 별도의 물통 없이도 수채화를 가능케 하는 워터브러시(물붓)는 내게 꼭 필요한 도구이다.
채색 도구로는 수채물감과 색연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물감은 고체케익 세트로 나온 물품들을 애용하고 있는데, 사이즈가 작아 휴대하기에 좋으면서도 물감이 굳혀진 상태로 판매되기 때문에 구입 후 바로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여행 중에는 휴대하기에 간편한 A5 사이즈나 그보다 작은 크기의 드로잉북을 선호한다. 특히 수채 엽서 세트의 경우 여행 중 만난 이에게 작은 그림 선물을 할 때 사용하기 좋다.
나열해 놓은 준비물들 가운데 고체케익 세트와 드로잉북은 상황에 따라 하나씩만 챙겨 가방에 넣곤 한다. 모든 도구를 가방에 넣어도 책 한 두 권의 무게에 지나지 않으니 짐이 많아질 것이 두려워 그림 여행이 내키지 않는다는 핑계는 이제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계절이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간단한 도구를 챙겨 집 밖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생겼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