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두터운 옷을 꺼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성균관 문묘에서 바라본 가을의 진득한 색채를 종이 위에 담으며 떠나가는 가을을 바라보는 아쉬운 마음을 나름의 방법으로 달래 보았습니다.
광희문은 지나가면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까이 다가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마을 한 켠에 얌전히 들어서 있는 이 문은 1396년에 도성을 축조할 당시 창건되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름으로 시구문(屍軀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했으며, 조선시대에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도성 밖으로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배경을 알고 나니 조금 오싹해졌어요.
얼마 전에는 서울 정동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찾았습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분들과 이곳의 풍경을 담아보기 위해 잠시 다녀왔습니다. 최근 며칠간은 날씨가 참 포근했어요. 성당의 벽면에 와 닿는 가을 햇살의 느낌이 부척이나 보드랍고 따스했습니다.
요즘은 성북동 북정마을의 풍경들을 담고 있어요. 다섯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북정마을의 곳곳을 현장에서 그려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북정마을의 바로 옆으로는 한양도성 성곽길이 이어집니다. 성벽의 낮은 둔턱 위에서 바라보는 북정마을의 모습을 펜과 물감으로 종이 위에 기록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계절과의 이별은 아쉽지만, 그리운 순간의 기록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작은 기쁨을 느낍니다.
함께 그려 더욱 행복했던 순간들.
이번 가을은 유난히 더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