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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Apr 14. 2016

함께 봄을 기다리는 꽃

Drawing Blue #09

버스로 지나친 적은 있어도 자세히 둘러본 적은 없는 생소한 동네.

어느 겨 처음으로 위미리를 찾았다.


제주는 분명 아름다운 섬이지만, 제주의 들판을 휘젓고 다니는 겨울의 칼바람은 꽤나 맵고 아팠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이것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눈송이 섞인 바람 속을 걷다 보면, 해녀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갯바위 위에 만들어놓은 불턱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내게 위미리는 작은 피난처가 되어 주었다.

위미1리에 있는 책방 라바북스와 맛있는 베이글을 파는 시스베이글이 나란히 입점해있다. 라바북스에 들러 무겁지 않은 책 한 권을 구입한 후 시스베이글에서 베이글과 커피를 주문했다. 쫄깃한 식감의 베이글과 커피 그리고 나른한 필체로 쓰인 좋은 책 한 권. 그날은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꽉 찬 하루였다.

길가에 핀 애기동백

차갑고 고단한 계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위미리는 겨울이 되면 더 아름다워진다.
붉은 동백보다 1-2개월 먼저 피는 애기동백이 가장 먼저 겨울이 찾아옴을 알렸다. 애기동백은 동백에 비해 더 큰 꽃을 피워내는데, 꽃송이째 떨어지는 동백과는 달리 꽃잎이 한 장 한 장 흩날리며 떨어진다. 동백꽃이 선명한 붉은색인 것에 비해 애기동백은 분홍빛 꽃을 피워내는 것도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이다.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집중적으로 피어나기 때문에, 만개한 애기동백은 발랄하고 화려하다.

커피 잔에 담긴 위미리의 하늘 / 와랑와랑

계절이 바뀌어 3월에 다시 위미리를 찾았다. 동네 골목마다 매서움이 사라진 온화한 봄바람이 가득했다. 위미 동백군락지를 가는 길에 만난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주문했다. 잔에 담긴 제주의 하늘에서도 봄 냄새가 느껴지는 듯했다.

위미리의 붉은 동백

위미리에 봄은 이미 가까이 와 있었지만, 곳곳에 무더기로 피어있는 동백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제주의 겨울꽃이라 부르기에 무색할 정도로 동백은 3월에도 이곳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동백은 1월부터 개화하기 시작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고 하니, 이곳의 동백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셈이었다.

보듬어 봄 / 2016

결핍의 계절에 피어나 함께 봄을 기다리는 꽃.

동백의 꾸준함과 겸손함이 좋다. 애기동백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심한 듯 꽃송이툭툭 떨어지는 이 붉은 꽃을 유난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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