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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Dec 31. 2019

바위 위에 새겨진 교회

헬싱키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둘러보고 싶었던 그곳. ‘암석교회’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로 향했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 입구


교회에 처음 도착했을 때 다른 곳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뾰족한 첨탑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다. 그 대신 낮고 둥근 지붕을 바위가 받치고 있었다. 바위 입구로 들어가니, 마치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교회 입구에서 내부 공간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도 높은 계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권위가 사라진 그 풍경 속에서 묘한 따뜻함

을 느꼈다.


현재의 교회 건물은 전쟁 이후 1969년에 설계된 것이다. 젊은 건축가 티모Timo , 투오모 수오마라이넨Tuomo Suomalainen 형제가 그 주역이었다. 두 형제의 고향은 발트해의 북동부에 위치한 수르사리섬인데, 지금은 러시아령 고글란트섬으로 불리고 있다. 남북으로 11킬로미터, 동서로 1~3킬로미터의 길쭉한 형태이며 섬 대부분이 화강암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진 척박한 곳이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역시 그들의 고향과 마찬가지로 붉은 화강암 지대가 많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가 지어질 장소 역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작은 언덕 위였다. 수오마라이넨 형제는 그들의 고향과 닮은 이 암석 언덕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교회를 방문할 사람들에게 최대한 자연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려고 했기 때문에,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암반 위에 놓이듯 설계되었다.


교회가 세워진 돌 언덕


내부 공간은 2층의 구조로 되어 있었다. 층계를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니, 낮고 둥근 교회의 천장이 더욱 자세히 보였다. 천장에는 동심원을 그리듯 구리줄이 빽빽하게 덮여 있으며 전체의 길이가 무려 22킬로미터에 달한다. 지붕 부분을 제외하면 교회의 내벽은 원래 이곳에 있던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암반이 그대로 노출되

어 있었는데, 헬싱키를 온통 뒤덮고 있는 화강암의 강하고 지속적인 성질은 핀란드 사람들의 영원한 믿음을 상징한다. 이 굳건한 바위로 인해 교회는 외부의 번잡함과 완벽히 차단되어 경건하고 고요한 내부 공간을 유지할 수 있다. 단, 시끄럽게 떠드는 관광객만은 어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자연 암반 사이에 낮게 지어진 교회이기에 수오마라이넨 형제는 채광에 무척 신경을 썼다. 내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180개의 콘크리트 들보가 지붕과 암반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고, 놀랍게도 이 들보 사이를 모두 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360도로 펼쳐진 이 창문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헬싱키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였기 때문에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 공간을 차분히 그리기로 했다. 펜이 미끄러지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 교회의 디테일을 천천히 옮겼다. 느리고 침착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헬싱키 사람들이 아끼는 이 공간이 더욱 경건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혼자 천천히 북유럽』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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