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페레의 숲과 호수를 만나다
평소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시각인 새벽 여섯 시. 덜 깬 눈을 비비며 손을 뻗었다. 찰랑거리는 하얀 커튼을 걷어내자, 푸른 아침이 침대 위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곳에서 나는 아무리 일찍 일어나려고 애써도 항상 게으른 사람이었다. 북구의 아침은 언제나 한 발 먼저 찾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왠지 느슨하게 보내고 싶었다. 숙소를 나설 채비를 하며, 단순한 목표 하나를 세웠다. 탐페레의 호수를 바라보는 것. 오늘의 여정에 그것 이상의 목표는 부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도심의 북쪽으로 이동했다. 탐페레를 둘러싼 거대한 두 호수 중 하나인 네시 호가 그곳에 있었다. 아침부터 맑았던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설마 비가 오겠어?'라고 생각한 순간, 후드득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이 젖는 것은 괜찮지만, 가방 속의 스케치북이 젖는 것이 걱정되었다. 가까이에 있던 건물의 처마 밑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했다.
어디선가 까르르 하고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 건너편에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 비를 피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간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도로 너머로 놀이공원 하나가 보였다. 새르캔니에미 Särkänniemi 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 방향으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자작나무 가로수 너머로 우뚝 솟아 있는 타워 하나가 계속 눈에 밟혔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늘의 유일한 목표는 호수를 바라보는 것. 그곳에 오르면 네시호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타워의 이름은 네시네울라 전망대 Näsinneula Observation Tower 였다. 다행스럽게도 놀이기구를 제외하고 타워만 이용할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한 티켓이 있었다. 매표소 안에 있는 앳된 얼굴의 청년에게서 한 장의 티켓을 구매했다.
여름날의 여우비에 불과했던 것인지,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상층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몸에 묻은 빗물을 닦아냈다. 머리와 외투는 이미 축축해져 버렸지만, 탐페레 북쪽의 호수를 한눈에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짧은 안내방송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전망대 내부로 한 발짝 걸어 들어가자, 네시 호수의 파노라마가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가득 펼쳐졌다.
'고요함'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보는 듯했다. 작은 산 하나 없이 평탄한 지평선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 너른 대지는 푸르른 호수와 거대한 숲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자연이 거기에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 장면은 고독하면서도 아름다웠다. 풍경이 전해오는 담담한 표정이 조금 외롭지만 슬프지 않은 내 여행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숲과 호수가 만드는 아득한 패턴 속에서 한동안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8월의 햇살이 마지막 남은 비구름마저 몰아내자, 거짓말처럼 탐페레의 도심 위로 작은 무지개가 떠올랐다. 계절이 전해 주는 작은 위로가 고마웠다. 다시 힘차게 걸어갈 힘이 생겼다.
『혼자 천천히 북유럽』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