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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모 Nov 07. 2016

마음에 남은 제주의 카페들

Drawing Blue #17

공천포의 카페 숑

여행의 질은 여러가지 요소가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관광지가 있느냐가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여행 중에 만나는 편안한 '공간'의 유무입니다.

산방산 아래의 레이지박스


13개월 동안 제주를 취재하며, 이 섬에 자리잡은 크고 작은 공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 펜션 등의 숙소가 몸의 휴식을 위한 곳이라면, 제주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카페들은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었습니다.

평대리의 아일랜드 조르바

제주의 카페는 육지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줍니다. 이제는 점차 변해가고 있다지만, 아직은 대형 프렌차이즈 보다는 개인 사업자가 많습니다.

한동리의 요요무문

육지의 카페는 큰 건물의 부속품처럼 입점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독채가 많은 제주의 카페들은 독립적인 구조로 인해 운영 주체의 정체성이 공간 속에 더욱 짙게 녹아들었습니다.


종달리의 바다는 안보여요
송당리의 풍림다방

제주 시골 마을의 카페들은 밤 늦게 영업하지 않습니다. 휴무도 의외로 불규칙적인 편입니다. 어렵게 찾아왔는데, 문을 닫아 헛걸음을 하게 된다면 허탈하고 다소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요.


이곳이 나를 위한 서비스가 당연히 제공되어야하는 냉정한 산업의 현장이라는 생각을 잠시 놓아 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육지에서의 날카로운 원칙들은 이 섬에서 만큼은 조금 무뎌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선흘리의 카페 세바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 으레 녹초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종이 위에 조금이라도 더 담아보기 위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언제나 다 고 돌아오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돌아온 제주시에서는 포근한 휴식처가 절실했습니다.

컴플리트 커피

공항으로 가기 전에 자주 방문했던 카페는 연동의 "컴플리트 커피"와 이도2동의 "그러므로" 였습니다.  컴플리트 커피에서는 주로 아이스 라떼를, 그러므로에서는 항상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메리하하를 마시곤 했죠.


고소한 끝맛이 인상적인 라떼와 기분 좋은 달콤함 가득한 메리하하. 여행의 끝자락을 어루만져주는 정성스러운 한 잔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여행이 제대로 마무리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그려 카페 '그러므로'에 선물한 작은 그림 하나.

여정에 지친 이들에게 조그만 위로가 되는 한 잔의 커피.  제 손 끝에서 태어나는 그림들도 누군가에게 그 만큼의 작은 의미가 될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일 것 같.


공기 속에서 이제 조금씩 겨울의 냄새가 느껴집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제주의 포근한 공간 속에서 마시던 한 잔의 커피가 더욱 그리워 지겠지요. 은근히 겨울을 기다려봅니다. 첫 눈이 내릴 무렵 저는 아마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을 것 같네요.


드로잉 제주 (경향미디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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