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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묻는 곳, 황우치해변

Drawing Blue #23

by 리모
산방연대_700.jpg 산방연대


나 힘들어.

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내 마음의 짐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 낯설었다.

쓸데없이 자존심이 센 것이 언제나 문제였다.

촌스럽지만 그게 나였다.

레이지박스_700.jpg 카페 레이지박스
용머리해안_800.jpg 흐린 날의 용머리해안

어둡고 탁한 하늘.

머리카락을 어지럽게 흩어버리는 바람.

무작정 내려온 제주는

나를 닮아 우울하고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세찬 바람 속에 휘청이면서도

내겐 가야할 곳이 있었다.

어두운산방산_800.jpg 어두운 표정의 산방산


해변이지만 모래가 아닌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어

파도가 지척에서 거칠게 제 몸을 부딪는 곳.


어떤 해변보다 더 큰 파도의 외침 속에

내 부끄러운 고백도 먹먹한 울음도

모두 묻어버릴 수 있는 곳.


해안바위_800.jpg 황우치해변


그곳에는

나보다 더 크게 울어주는 바다가 있다.

온몸으로 아프게 부딪치는 파도가 있다.

그들이 전해주는 무한한 위로가 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차가울 것 같던 바다의 하얀 손길은

묘한 따스함으로 내 뺨에

그리고 이마에 와 닿았다.


표지입체_와이드.jpg 드로잉 제주/ 경향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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