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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말 Sep 19. 2020

아침저녁 가디건이 필요한 계절엔 이 노래를 꺼내들어요

오늘의 음악 <정경화 - 너를 생각하며>

여자 가수들이 가창력 부심을 부릴 때 선택하는 노래들이 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경화의 <나에게로의 초대>다. 일반인 중에서도 가창력 부심 좀 있다 하는 여자들은 노래방에서 이 곡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끔은 너무 '부담스러운' 부심곡의 상징처럼 개그 프로그램에서 쓰일 때도 있어 개인적으론 슬펐지만 정경화라는 가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린 곡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경화는 이 곡 하나로 원히트 원더처럼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아마 정경화의 얼굴을 알거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한기가 슬며시 찾아드는 초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노래나 목소리들이 있는데, 나에게 정경화는 그런 가수 중 한 명이다. 사실 정경화의 목소리는 '나에게로의 초대'보다 더 유명한 곡으로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한데 신촌블루스의 '골목길'에 코러스로 참여했던 이가 바로 정경화다.


1990년 솔로 1집을 내며 데뷔하기 이전에 이미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면서 노래 잘하는 가수로 알려져 있었다고 하고, 신촌블루스 엄인호 씨의 눈에 띄어 객원보컬로 이미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로의 초대>는 1996년 3집에 실린 곡으로,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기까지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난 정경화 1집의 카세트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는데, 1집 발매가 93년이니까 내가 중3 때 이 앨범을 구입했단 얘기가 된다. 국민학교 6학년 김현철 1집 카세트테이프 구입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나의 카세트테이프 구매 시대가 시작되면서 넓고 넓은 음악의 세계 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정경화 1집의 구매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물론 당시 정경화 1집을 듣고 함께 공유할 또래 친구들은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정경화 1집에는 아름다운 포크 블루스풍의 노래들이 실려 있었는데, 그중에 특히 이정선의 앨범에 먼저 실려 있었던 <너를 생각하며>, 엄인호가 작곡한 <거리에 서서>, 신윤철이 만든 <내가 왜> 등이 내가 특히 좋아했던 노래였다. 쭉쭉 뻗아나가는 시원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허스키한 블루스 느낌이 참 멋진 가수였다. 그때까지 내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멋짐'을 갖고 있었다. 나중에 <나에게로의 초대> 단 한곡으로 정경화라는 가수의 모든 것이 단정 지어진 것 같아서 나는  안타까웠다.







우리나라 DJ 1세대인 고 이종환 씨와 함께 밤 프로그램을 할 때, 라이브 초대석에 꿈에 그리던 세 분을 한자리에 모실 수 있었으니, 이정선-엄인호-정경화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세 분 모두 방송을 자주 하시는 분들은 아니지만, 아예 활동을 안 하시는 분들도 아니어서 나오실까 안 나오실까 긴가민가 하며 섭외를 넣었는데 모두 흔쾌히 나오신다고 하셨다. 그때 정경화 씨는 라디오에 모습을 보인 지가 오래돼서 연락처가 없었다. 엄인호 씨에게 먼저 전화를 드려 섭외를 하고 '혹시 정경화 씨 연락처 아세요? '하고 작가가 여쭤보니 본인도 모른다고 하셨단다. 다른 경로로 알아봐서 정경화 씨께 전화를 드리고 '엄인호 씨도 나오시는데, 번호를 모르신다고 하던데요' 하니까 '어머 그 오빠도 참~ 며칠 전에 통화했는데~'라고 하셨다는 거.. 그래서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셨나,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막상 세 분이 스튜디오에 모이니 동창회같이 반갑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10년도 더 흘렀지만, 그 날의 설렘과 행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세 분은 미리 맞춰보지도 않았다고 하면서도 마치 어제까지 함께 연습한 듯 자연스레 라이브를 펼쳤고, 마치 20대로 돌아간 듯 세 분이 불렀던 '뭉게구름'에 이종환 씨 까지도 신나 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세 분이 기억을 더듬어봐도 '라디오'에서 세 사람이 이렇게 라이브 하는 건 처음인 거 같네?라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내가 카세트테이프로 되감기를 하며 듣던 1집 데뷔 때로부턴 많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지만, 시간의 흐름이 묻어나던 정경화 씨의 목소리가 꿈인 듯 현실인 듯 믿기지 않았다.

수많은 명곡과 우리 가요계의 스타들이 배출된 신촌블루스에서 한영애, 이은미 등 걸출한 보컬리스트들이 나왔지만 정경화는 많은 리스너들에게 알려지지 못해 늘 아쉽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다. 가을 채비할 음악들도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다.

https://youtu.be/8M6OV5Frodk

정경화 1집 <너를 생각하며> (이정선 작사/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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