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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극 서편제 : The Original

삶이 잔인하여 예술은 더 가슴이 아프다

by 얼룩말

22곡 판소리로 풀었다…원작의 '한' 모질게 녹인 소리극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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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최초로 (공식 관객) 100만을 넘긴 영화 '서편제'. 천만의 오타가 아니다. 백만 관객.

백만이라는 숫자에 기록을 매길 만큼, 1990년대 초의 한국 영화 시장은 작품성과는 별개로 마켓으로서의 성숙도와 정교함은 미숙했던 것 같다. 실제로는 관람객이 더 많았을지언정 백만이라는 공식 기록은 처음이었다는 말이니까.


당시 시대적 배경 - 문화적인 잠재력이 여러가지 시대적 시너지를 얻어 특이점에 이르렀고, 사람들의 문화적 성숙도와 맞물려 이 작품은 '우리 영화'의 상징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우리 영화, 우리 문화, 우리 민족의 잠재성 같은 것들이 그 키워드였다.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여러 해석이 나와서, 시대에 뒤떨어진 시각을 담았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에 정동극장 30주년에 맞춰 새로 무대에 올려진 서편제 디 오리지널은 영화보다는 이청준의 원작 소설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제목도 오리지널이라고 붙였다.


이렇게 유명한 영화지만 사실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영화 같아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왠지 너무 떠들석하게 칭찬하니까 그런 반감도 들었다.


이번에 서편제 디 오리지널을 보고는 영화가 오히려 궁금해졌다. 소리극 서편제를 보기 전까지는 내용에 대해 크게 기대는 없었다. 다만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유명 연출가 선생님과 작창을 담당한 음악감독님의 작품이 궁금할 뿐이었다. 그런데 소리극 서편제를 보며 완전히 극 속에 빠져버렸다. 대목대목 등장하는 소리는 작창도 있지만 판소리 다섯바탕 중 매우 적절히 맞아 떨어지는 대목들을 배치해서 원형의 소리를 들려준다. 가사는 역시 한국인에게도 어렵기 때문에 자막이 있는데, 자막을 보면서 판소리 원 가사에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심청가, 춘향가, 흥보가.. 내용은 이것과 상관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 속에 인간들의 공통적인 희로애락이 어찌 이리 표현이 잘되어있지? 수백년 건너 옛날에 만들어진 소리의 가사인데, 표현은 조금 낯설지언정 읽고 들으니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압축적으로 꿰뚫어서 만들수가 있을까? 감탄에 또 감탄이다.



안이호의 소리는 아비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연기도 너무 잘했다. 김우정의 소리는 아기들의 노래같이 천진난만하기도 하고, 또 너무 슬프기도 하다.

"아비가 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다, 소리는 한이 있어야 할 수 있다면서."

이 한줄로 논란은 압축된다. 그런데 이청준의 소설 원작이 있었던 것은 이 말이 맞다는 의도가 아닐 것이다. "딸이 친딸이 아니기 때문에 도망갈까봐 눈을 일부러 멀게 해서 자기 곁에 주저앉혔다."

이것도 그냥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 어디에서도 이렇게 주장된 부분은 없다. 아비의 마음은 진짜 무엇일까? 이것일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다. 사람의 마음은 단 하나일 수가 없다. 내가 홀로 외로워질까봐 딸을 주저앉힌 것도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일 수 있고, 소리를 잘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도 인간의 헛된 욕망일 수 있다. 정말 가슴을 치며 울리는 것은, 이렇게 이기적이고 악한 인간의 모습 속에서 나온 소리인데, 어째서 그 소리가 듣는 사람의 귀에 들어오면 마음이 찡하고 눈물이 나오는 걸까? 나는 그것이 이청준이 말하는 예술의 아이러니이자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이면에는 고통스러운 삶이 존재하고, 악한 삶도 존재한다. 훌륭한 예술을 배출했다고 해서 악한 이면을 용서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고, 악한 이면이 있다고 해서 거기서 나온 모든 예술은 폐기되어야 하는가 질문에 그렇다고만 답할 수도 없다. '서편제'는 '심청'과는 다르다. '심청'을 옜날 사람들이 받아들일 때 효심 있던 심청이 장하다, 너희들도 효를 행하며 살아야 복받는다고 가르친 것이 표면적인 명분이지만,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시대가 강조하던 '효'에 대해 어떻게 뒷말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아 모른다.

'서편제'는 문학가에 의해 현대에 창조된 문학 예술이고, 단지 소리를 위해 딸을 희생시켰다는 명제에 동의해서 '백만'의 관객이 눈물 흘린 것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영화를 다시 보니, 오정해는 디 오리지널의 김우정에 비해 무척 순응적이기는 했다. 김우정은 '딸 눈깔이 이지경인데 소리가 중하냐'며 큰소리도 낸다. 소리극을 보며 나는 많이 울었다.

우리는 소리꾼이 아니지만 인생에선 그와 비슷한 여러 일들이 벌어진다. 너는 무엇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강변하는데, 나는 그것이 이해 되지 않는다. 당신이 강변하는 그 일이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인생까지 희생할 만큼요? 특히나 그것이 가족이면 더 그렇다.



소리극은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판소리를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판소리를 마주할 수 있다. 소리꾼들의 연기와 소리가 정말 남다르게 들린다.

서편제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에서 한국영화클래식으로 무료 제공되고 있다. 리마스터링을 하였는지 화질도 아주 좋다. 임권택의 서편제는 대중을 위한 드라마에 있어서는 정말 장인이구나 싶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어져 있다. 두 가지를 같이 비교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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