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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룩말 Sep 08. 2020

나는 국민학교 85학번이다

빵집의 추억 

영화 <유열의 음악 앨범>을 본 관객 중에 1994년에 빵 좀 사 먹어본 사람들은 알아챘을 것이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적어도 1994년의 빵집은 유리 전시대에 빵을 넣고 팔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빵을 바구니나 쟁반에 듬뿍 담아 유리 전시대에 넣어놓고 "팥빵 2개랑 크림빵 2개요"라고 하면 점원 언니가 집게로 꺼내 흰 봉투에 담아주던 영화 속 시대는 그보다 전이다. (그래서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되던 한 만화엔 주인공이 머리에 네모난 종이 빵 봉투를 쓰고 축구 선수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설정이 나온다. 빵 봉투에 빵을 담아주던 시대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설정이다.) <초원 제과>라는 이름의 동네 빵집과 그 빵집 비닐봉지에 그려진 (짝퉁) 미키마우스의 모습이 기억난다. 미키마우스가 한 손에 케이크를 들고 있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국민학교 85학번이다.


나는 1985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가 2학년 때 86 아시안게임을 봤고, 4학년 때 88 올림픽 포스터와 참가국 국기를 죽어라 그리던, 국민학교 85학번이다. 올림픽은 국가대표선수들이 나가는 건데, 왜 우리가 한복을 입고 부채를 들고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에 맞추어 매스게임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지, 지금도 궁금하기만 하다.  

아무튼, 내가 국민학교 5, 6학년 때쯤 동네빵집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는데 그것은 바로 빵의 낱개 포장 시스템이었다. 하나씩 비닐포장을 한 빵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개별 포장이 다가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빵을 직접 골라 담는 것, 이것을 새로운 말로 '셀프서비스'라고 불렀다.

정말 매우 세련되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모차르트 제과점'이라는 빵집이 새로 문을 열었는데, 동그란 피자빵이 천 원이었다. 하굣길에 친구 서너 명이 동전을 모아 피자빵 한 개를 사서 나눠먹었다. 주인 언니가 피자빵을 인원수대로 똑같이 등분해 주었다. 천 원짜리 피자빵을 서너 명이 나누어 먹으니 배에 기별이 갈리 없었다. 때로는 양이 너무 적어 안돼 보였는지 언니가 크림빵을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몇년도였는진 정확히 모르지만, 이미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크라운 베이커리>라고 대기업 체인 형태의 빵집이 등장했었다. 규모가 꽤 컸다. 80년대 중후반엔 동네 빵집에도 비즈니스 모델의 변혁이 찾아왔던 게 아닐까? 얇은 화이트 초콜릿이 깃털처럼 뒤덮인 새로운 디자인의 '3단 시럽 케이크'는 크라운베이커리의 대표상품이었다. 케이크를 먹는 일이 그렇게 자주 찾아오진 않았지만, 가끔 회사원이었던 이모가 사다준 크라운베이커리의 호두파이는 참 고급스럽고 맛있었다. 하얀 종이상자 안에 다시 한번 비닐로 포장되어 있던 호두파이. 지금은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있는데도, 똑같이 생긴 호두파이는 어디에도 팔지를 않는다. 이제는 내가 이모에게 호두파이를 몇 개라도 사줄 수 있는데 참 아쉽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크라운베이커리의 초창기 로고와 함께 청춘스타 김혜수와 손숙이 모녀로 등장한 TV 광고 화면도 발견되어 반갑다. 하지만 한창 잘 나가던 크라운베이커리는 시대의 변화에 밀려 폐업수순을 밟았다고 하니, 이것 또한 괜스레 아쉽다. 





어쨌든 정해인 같은 빵집 오빠와 김고은 같은 빵집 언니가 정답게 빵을 집게로 담아주던 빵집은 영화에서처럼 94년에는 아마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 같다. 기왕이면 영화에서 그런 시대적 고증은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국민학교 85학번으로서 조금 아쉽다. 얼마 전, 요즘 SNS에서 한창 뜬다는 합정동의 어느 빵집에 친구를 따라 가봤더니, 카운터에 빵 쟁반을 쭈욱 늘어놓고 "이거 하나, 저거 하나요" 하면 주인이 담아주더라고. 30여 년 전 동네 <초원 제과>가 생각나 혼자 웃었다. 비즈니스 모델도 돌고 도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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