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재계를 포함해 사회 유력층과의 네트워크를 토대로, 범죄의 연대를 만들었던 억만장자 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 미국의 전.현 대통령들부터 셀러브리티들까지 줄줄이 굴비처럼 딸려나오는 이름들에 경악스러울 뿐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제프리 엡스타인 : 괴물이 된 억만장자>는 그의 소아성애범죄와 이를 덮으려는 사악한 범죄의 전모를 짚는 충격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이 다큐를 보다보면 한 사람의 영향력과 유명세가 얼마나 허망한지 알 수 있다.
엡스타인은 어떻게 전세계를 주름잡는 거물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나? 상당 부분은 '레퍼런스의 허상'에 기인한다. 아무개 정치인과 친한 사이라는 사실, 그 하나로 그는 다른 유력인사와 어울릴 수 있었고, 이제는 두 명의 유력인사와 허물없는 사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유력인사에게 쉽게 소개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는 어느 때보다 네트워크와 평판에 기대고 있는데, 누가 누구와 친하다는 것, 거물이라는 평판, 양질의 네트워크를 보유한 사람이라는 소개가 자칫하면 실체없는 허상의 말로 지은 집과도 같다는 것을 엡스타인의 사례는 알려준다.
그렇다면, 제일 처음 내세울 것 없었던 젊은 청년 엡스타인 (심지어 대학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던)이 어떻게 해서 뉴욕 월스트리트에 입성할 수 있었나?
이 다큐멘터리는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화를 소개한다.
월스트리트의 유명한 투자사 베어스턴스(Bear Stearns)에 한 젊은 지원자가 면접에 참가한다. 그의 이름은 제프리 엡스타인. 면접관이었던 마이클 테넌바움(Micheal Tennenbaum)은 열정과 자신감이 넘쳐보이는 이 남자를 선발했다. 그런데 얼마 후 '명문 대학을 졸업했다'던 그의 이력서가 거짓말임을 알게 된다.
- 당신은 학력을 거짓말했군? (You lied about your education.)
- 맞습니다. 좋은 학위가 없었다면 아무도 저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을 거니까요. (Yes, I know. Without an impressive degree, nobody would give me a chance.)
당황하거나 사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거짓말을 순순히 인정하면서 오히려 이 거짓말이 마치 입사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태연하게 대응했던 엡스타인. 테넌바움은 엡스타인을 내쫓기는 커녕, 그의 거짓말을 그대로 넘어간다. 오히려 그의 솔직함, 자신감, 그리고 뛰어난 설득력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대학 졸업장이 없어 기회를 잃는 것일지 모른다며, 자신이 그의 미래를 막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괜한 걱정을 하며 테넌바움은 엡스타인의 거짓말을 애써 못본 척 했는지 모른다.
다큐멘터리에서 테넌바움은 이렇게 후회한다.
- 그때 나는 월스트리트의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I didn’t realize that I was creating one of the monsters of Wall Street.)
테넌바움의 고백처럼, 이 이후로 엡스타인은 베어 스턴스의 직원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출발로 해서 거짓말과 사람을 조종하는 수완을 더해 점차로 재계의 거물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청년시기의 엡스타인의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 테넌바움이 그에게 경고하며 해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소하게 생각했던 그의 거짓말을 그대로 넘어가주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어떤 동기로 거짓말을 했든지, 거짓말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관계나 업무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 사소한 거짓말은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결국은 파국을 가져온다. 거짓말로 세상을 간단히 속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과한 자신감이 있다. 그 눈 먼 자신감으로 인하여 미래에 어떠한 피해자가 생길 지 모른다.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례에서 극단적인 예시를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소한 거짓말과 부정을 방관하고 용인해준 댓가로 무럭무럭 자라게 되는 괴물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