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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Jul 17. 2019

회사 메신저에 로그인이 안된다

실리콘밸리의 디지털노마드 - 정리해고 I

2016년 6월 25일, 미국 뉴욕 맨하탄


아침에 잠결에 미팅 스케쥴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켰는데, 로그인이 안 된다. 우습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아, 짤렸나?' 그 다음에 '에이 뭔 에러겠지. 수상하기는 하지만' 하고 일단 다시 잠.


일어나서 회사 컴퓨터로 로그인하는데, VPN (사내망) 접속 불가, Outlook (이메일) 접속 불가, Slack (메신저) 의 고프로 채널 접속 불가, Okta (사내서비스) 로그인 불가, 스탠드업하러 WebEx (화상회의) 를 켜는데, 이건 더 이상 Host 가 valid 하지 않은 미팅이라고 나옴. 


'그려 날아갔으면 우리 팀이나 조직이 통채로 날아갔겠지...' 살짝 쫄깃해지면서 구글에 고프로에 관련된 뉴스를 검색. 레이오프 같은게 있었으면 (사실 당사자들이나 내부 직원이 최소 몇시간 전에는 미리 알고 언론에 나가지만) 뉴스에 있었을테니. 열어보니 첫 페이지에 그런 기사 없음. 살짝 안도, 하지만 여전히 불안.


마침 최근에 다른 파트너사와 작업하는 일이 있는데, 그쪽 Slack 채널에서 메시지가 반짝.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팀원의 메시지. 뭔가를 체크해달라고 해서, 체크를 하면서 - 어 그런데 VPN도 메일도 아무것도 로그인이 안돼. 그쪽도 그래? - 라고 물어봤더니, 다행히(?) 샌프란 오피스 전체도 그렇다고. 예-전에 쓰고 아직 살아있는 힙챗에 들어가보니 매니저의 공지가, (internally LDAP 이 다운되서 대부분이 안되니 아직 출근 안 했으면 굳이 출근 안 해도 된다는) 페이스북에는 휴가 중인 동료가 쪽지로 보내준 긴급 전달 상황이 있었음.


휴, 안 짤렸구나, 회사 시스템 오류구나. 징가에서 6개월마다, 고프로에서도 입사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벌써 한번의 레이오프가 지나갔었던지라 ( = 커리어 3년 6개월 중에 레이오프가 6-7번 지나갔나? 많아서 정확히 세지도 않음) 불안하고 쫄깃하지만 꽤나 덤덤하게 짤렸나?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신기했음. 


뉴스 찾으면서, '아놔, 원격 근무 좋았는데', '다른 원격하는 회사 떨어지면 뉴욕에서 잡 잡아야겠지?', '아 면접 공부 다시 해야돼 젠장 ㅠㅠ' 뭐 이런 생각들을 굉장히 차분하게 하면서 '아 그래도 영주권 있으니까' 라는 생각까지.


레이오프는 일상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내 직업안정성은 0에 가깝다. 참 불안한 일인데, 이게 적응이 조금은 되서, 아니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니 스트레스 덜 받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생기는 변화. 그리고 이 레이오프에 대한 마음가짐이 오히려 내가 원격근무를 하고 돌아다니는데 큰 도움이 된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되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항상 나를 괴롭히지만, 열심히 하고 있고, 열심히 피드백을 물어보고 있으니 짤리면 짤리는거고, 그러면 다음 journey 가 어디서 될지가 궁금 할 뿐.


미국에서 외노자로 일하면 이런 불안 정도는 함께 생활하게 되더라구요. 그래도 다행인건 미시적인 관점의 불안이지, 여전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 대한 수요는 좋아서 (내 전문성이 떨어짐을 일반성이 좋다고 한다면 ㅠㅠ) 거시적인 관점에 다시 갈 수 있는 회사는 많으니까 그 불안은 적기도 해서 그래요. 시스템 다운 한방에 저 멀리 안드로메다 근처까지 다녀온 생각을 적었습니다. 아오 해피 프라이데이.


*


미국에서 워낙 레이오프가 잦은 회사들에 있다보니 덤덤해지지는 않더라도, 이런 근원적인 불안은 늘 함께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뭔가 계속 여기서 일 할 것 같은 느낌의 직원이나 그런 느낌의 시스템을 발견하면 굉장히 의아하고 적응이 안된다. 업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은 나 스스로에 대한 업계 내에서의 경쟁력을 유지, 혹은 개선해나가는데에 큰 자극이자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스트레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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