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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Jun 10. 2017

싱가폴과 사랑에 빠짐

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원래 싱가폴은 오려던 나라가 아니었다. 부탄으로 가는 것을 알아보는 길에 들린 나라였고, 부탄 관광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뭔가 스케쥴링 잘못해서 온 나라였다. 딱히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느낌으로 돌아다니는 나를 끌어당기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부탄이 엎어지면서 빨리 코타키나발루나 타이페이로 목적지를 고민했고, 코타키나발루를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 예약도 해놓고 온 나라가 싱가폴. 




하지만 싱가폴이 이렇게 나와 잘 맞을 줄 몰랐다. 예상외의 취향저격. 관광하고 볼 것, 할 것들이 많지는 않지만 상관없었다. 워낙 관광에 크게 신경쓰는 타입이 아니었던지라. 그래서 나도 신기했다. 뭐가 나랑 잘 맞는것인지. 정리해봄. (음식 사진이 너무 많아서 내용에 관계 없이 하나씩 넣었습니다 ㅋㅋㅋ) 


#1. 날씨

싱가폴의 날씨는 덥고 습하다.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날 것 같은 분들도 있겠으나, 의외로 이게 나랑 잘 맞았다. 체질상 추위에 약하고 더위에 강하기는 했지만, 일단 그 더위를 온전히 몸으로 맞을 일이 적다. 모든 건물이 에어컨이 펑펑나오고 (전기 다 수입해서 쓴다는데 워낙 경제력이 강력해서 그런지), 대중교통도 잘 되어있고, 대중교통에서도 에어컨이 펑펑나온다. 그리고 도시가 작아서 택시나 우버를 타도 크게 부담이 없다. 그리고 버스/지하철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1정거장 거리, 10분 걸을 거리면 시간이 비슷하게 걸리더라도 에어컨 쐬면서 가려고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현재 우기라 간간히 비가 오는데, 비오고 나면 온도가 내려가서 살만하다. 그리고 비와서 꿉꿉한건 에어컨이 펑펑이라 해결된다.


이거슨 무지개 딤섬 - 7개의 다른 맛. 트러플, 랍스터 등등.


#2. 습도

싱가폴은 동남아라 습하다. 근데 만성 비염 같은 것이 있는 나한테는 의외로 잘 맞았다. 코를 자주 풀어서 코가 자주 헐고 피가 나는 경우도 있는데, 싱가폴에서 일단 코푸는 횟수가 줄었고, 그러다보니 코가 헐거나 아프지 않다. 목도 자주 건조해하는 편인데, 굳이 차를 많이 마시지 않아도 이곳에서는 목이 건조하지 않다. 생각해보니 가끔 피곤하면 라섹 수술을 했었던 눈이 건조할 때가 있었는데, 싱가폴에서는 눈이 건조하다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습한게 내 체질이랑 잘 맞는다고 느낀 부분. 그리고 워낙 에어컨을 펑펑트는나라가 건물 내에서는 덥거나 습하다고 느낄 틈이 없다. 10분 이상 안 걸어다니고 사는게 가능하다.


유명한 바쿠테. 송파 바쿠테 사랑합니다.


#3. 치안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미국 온 뒤에 가장 불편하고 적응하기 어려웠던게 치안에 대한 걱정이었다. 젊고 건강한 남자에게 서울은 매우 안전한 도시다. 치안에 대한 걱정을 안 하고 살다가 하고 살기 시작하니 알 수 없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많았는데, 한국 이외에 일본만 이렇게 안전한 줄 알았는데 싱가폴 최고다. 진짜 안전하다. 일본에서도 외국이라 밤에 혼자 걸어다닐 때는 아주 약간의 조심을 했었는데 (밤에 혼자 걸을 때는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듣지 않는다던지, 계속 핸드폰만 보면서 걷지 않는다던지) 싱가폴에서는 서울급으로 안전하게 느껴진다. 새벽 2시에 골목을 혼자 걸어갈 일이 있어도 왼손에 맥북을 들고, 오른손에 아이폰으로 카톡하면서, 이어폰 꼽고 음악을 듣고 있어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역시나 유명한 칠리크랩. 조금 비싸지만 맛있어요.


#4. 깨끗함

싱가폴은 정말 엄청 깨끗하다. 깨끗함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라 되는 일본보다도 더 깨끗한 것 같다. 매일 밤 청소를 하는지 거리가 정말 깨끗하다. 내 숙소가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어서 치안도 이 깨끗함도 일반적으로 사는 곳에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말도 안되게 깨끗하다. 이정도로 깨끗한 거리를 유지하는 곳은 서울에서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Jade 에서 먹었던 디저트. 디저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건 진짜 맛있었음.


#5. 음식

싱가폴은 foodie 의 나라라고 한다. 먹을 것들이 다양하고 많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섞여있는 나라이기도 하고. 싱가폴은 Hawker Center 라는 곳이 곳곳에 있다. 푸트코트인데, 다양한 음식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판다. 국수 한 그릇에 한국 돈 3000원이 안 되는 가격에 먹을 수 있고, 호커 센터의 물가는 이정도다. 근데 엄청 맛있다 - 즉, 로컬 음식이 내 입에 맞고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한그릇 먹고 2천원 정도 하는 눈 앞에서 바로 갈아주는 과일쥬스 하나 들고 올라오면 부러울 것이 없다. 그리고 다운타운의 코리안 타운이라 불리우는 탄종파가 지역에는 한국 음식점이 매우 많다. 한국 음식 먹고 싶은거 다 먹을 수 있다. 샌프란/뉴욕보다 더 깨끗하고 다양한 한국 식당과 한국 마트가 있어서 로컬과 한국을 넘나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두가지 이외에도 다양한 나라의 음식이 있고, 가격도 초저가에서 미슐랭 스타까지 다양한 선택이 있다. 또한, 서로서로 다 가까이 몰려있어서 접근성이 매우 높음. 


좋은 루프탑 바도 많다. 하지만 술은 비쌈. 그래도 맛있는 맥주들.


#6. 물가

사실 물가는 비싼 편에 속하는 편인데, 호커센터 덕분에 어느 정도 이상 수입을 낼 수 있으면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 하루에 한끼는 호커센터에서 먹는 편인데, 그럼 다른 한끼를 어느 정도 좋은 것을 먹어도 괜찮다. 그리고 대중교통이 저렴한 편이라 버스/지하철 마구 타고 다닐 수 있어서 좋다. 시원하고 깨끗하고 저렴한 대중교통.


고든 램지가 하는 미슐랭 1스타 식당. 돈에 비해서는 비추. ㅋㅋㅋ


#7. 대중교통

이미 몇번 언급을 했으나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다. 지하철도 버스도 잘 연결되어 있으며, 교통카드 하나로 다 해결이 가능하다. 버스/지하철비도 서울보다 저렴하다. 그리고 깨끗하고, 엄청 시원하다. 그래서 걷는 시간이 10분을 넘어갈 것 같으면 시간이 더 걸려도 대중교통을 탈 정도. 그리고 다운타운이 매우 작은 편이라 여차하면 택시를 타도 된다. 어지간히 가도 택시타고 10분 이상 달릴 일이 많지 않다. 택시비는 저렴하지 않지만, 10분 이내로 대부분 끊으니 택시비로 한화 만원 이상 나올 일이 드물다. (공항을 오갈 때는 제외.)


Satay 거리. 이 꼬치들이 다 합쳐서 만원도 안 했던 것 같음.


#8. 접근성

이건 내 숙소 위치가 다운타운 한복판이라 그렇지만, 모든 곳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다. 안전한 치안, 깨끗한 대중교통과 거리, 저렴한 대중교통,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고 오밀조밀 몰려있어 다 몰려있다. 그리고 택시에 하나 더 하자면, 싱가폴에서는 자동차를 몰려면 진짜 어마어마한 세금 폭탄을 맞아야 해서 자동차를 모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러쉬 아워에는 조금 밀리지만, 그렇게 큰 교통 체증은 아직 보지 못 한 것 같다. 


Duck over rice. Chicken over rice 와 함께 투탑.


#9. 언어 (추가) 

싱가폴은 기본적으로 영어와 중국어가 통하는 나라다. 영어가 자유로이 통용된다는 점이 내게는 큰 메리트 중의 하나. 이전에 파리에 있었을 때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해서 불편했다. 마레지구에 있었기에 영어가 사실 통하는데, 작은 로컬 음식점들은 프랑스어를 못 하면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림이 없는 메뉴판에 프랑스어로만 되어있는 레스토랑 메뉴들도 한몫했고. 캄보디아에서는 영어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단 다양성이 떨어지고, 관광객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 분위기도 조금은 불편했다. 일본에서는 나의 짧은 일본어로도 음식점에서 메뉴판을 읽고 주문을 할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생활이 많이 윤택했는데, 싱가폴에서는 영어가 되니 더더욱 편리하다.


한국의 그 분이 여기도 계십니다. 치느님.


#10. 숙소 위치 (추가)

순전히 운이 좋기도 했는데, 내 숙소 위치가 내 싱가폴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데 매우 크게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첫 숙소를 클락키/보트키 근처였는데 시끄러워서 탄종파가 근처로 옮겼었다. 그쪽에 있었어도 괜찮았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탄종파가 근처는 정말 접근성이 뛰어났다. 머무는 숙소의 1층에 일본 라멘집, 인도 카레집, 적당한 분위기의 바, 24시간하는 (내게는 물을 공급해주는) 편의점, 옆 건물에 한국 마트, 한국 치킨집, 한국 분식(!)집을 비롯한 10여개의 음식점, 그리고 길을 건너면 호커센터가 있다. 한블럭 더 걸어가면 스타벅스도 있고, 15분 정도 걸어가면 24시간 영업하는 탐앤탐스(!)와 맥도날드가 있다. 밤에 일하다 배고픈데 사놓은 비상식량이 떨어져도 대책이 있고, 무엇보다 안전하니까 아주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갈 수 있었다. 


Tian Tian Chicken Rice +_+


#11. 지인들 + 미녀인기작가님

이건 내 자신의 종특(!)이기는 하지만, 막상 싱가폴에 와보니 하나둘씩 아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싱가폴에 있는지 몰랐는데 와보니 싱가폴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는 후배들이 하나둘씩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만난 후배들, 미국에서 출장 온 선배들, 상해에서 출장 온 후배, 그리고 싱가폴로 인턴을 온 후배, 한다리 건너 소개 받은 분들까지 만나다보니 싱가폴에 아는 지인이 벌써 10명. 부빌 언덕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만약에 산다고 하더라도 좋은 일이다. 그리고 지인들 덕분에 여기서 살고, 일을 구하고, 비자를 받고, 집을 구하는 것 등 '삶' 에 대한 부분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브런치를 통해서 보다가 은근 슬쩍 페이스북 친구가 된 미녀인기작가 앨리스님을 만나뵐 기회가 생겼다. 


https://brunch.co.kr/@haneulalice <= 이분! 


무려 브런치 작가로 대상을 받아서 출판을 하신, 싱가폴의 셀레브리티 되시겠다. 처음 만났는데 의외로 죽이 잘 맞고 이야기가 잘 통해서 싱가폴에서 매주 토요일 브런치 메이트가 되어 매번 기본 다섯시간씩 수다를 떨었고, 무려 앨리스님의 첫 친필싸인이 들어간 저서를 선물 받기까지. 


정말 대단한 친구이고 필력도 입담도 성격도 thumbs up!


금새 친해져서 여러 이야기도 주고 받고, 졸지에 앨리스님 뵙고 싶다는 후배들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까지 만들게 되었음. 이렇게 생각보다 아는 지인들이 있었어서 싱가폴 생활이 더 윤택하지 않았나 싶음. 이건 정말 개인적인 부분이겠지만서도.




사실 이 나라가 마음에 들어서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일하는 것도 알아보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도 나쁘지 않다. 물가를 감당 할 수 있을 정도로 외국인에게 고연봉을 줄 수 있는 회사들이 있고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태평양 헤드쿼터들이 대부분 싱가폴에 있다. 구글 싱가폴을 포함해 개발자를 뽑으려는 기업들도 있고), 무엇보다 소득세가 10% 수준이다. 법인세도 비슷해서 많은 기업들이 들어와있는 것이라 하고, 현재 내가 소득세를 38% 정도 내는 입장에서 정말 저렴한 소득세다. 연봉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불러줄 수 있는 기업도 있는 것으로 보이고, 세금이 10% 면 내 입장에서는 연봉이 30% 상승하는 효과가 날테니. 


이것도 미슐랭에서 먹은.


그리고 애 키우고 살기에도 좋다고 한다. 근처 동남아에서 수급(?)되는 내니들이 생각보다 믿고 맡길 만큼 일을 잘 한다고 한다. 고연봉 외국인 입장에서는 내니 한두명 정도 쓰는 것이 어렵지 않고, 시내 중심가가 아닌 이상은 고연봉 외국인이 충분히 방 두세개짜리 집을 구해서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정도 되는 집에는 드룸으로 카운트 되지 않는 내니용 방이 보통 딸려있다고 한다;;


해산물도 신선했음.


그리고 싱가폴은 작고 좁다고 하나 고연봉을 받기 시작하면, 주말에 싱가폴에 머물면서 쓰는 돈으로 주변 동남아 국가 여행이 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미주를 제외한 여기저기가 모두 가까워서 유럽에 대한 접근성도 높다. 한국이나 유럽 모두 7시간 정도 비행이면 닿는 굉장히 위치도 좋은 것 같다. 


광어회에 매운탕 ㅋㅋㅋ 활어 엔삐라도...


고연봉을 받는 외국인이 될 수 있다면, 몇년 살아보기에 아주 괜찮은 도시라는 결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싱가폴은 언젠가는 무조건 또 올 것 같은 곳이고 굉장히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 저것 알아봤더니 살 수 있는 가능성도 꽤 있어보이구요. 덕분에 뒤에 코타키나발루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싱가폴에서 4주 넘게 머물다 갈 예정입니다. 벌써 한주 밖에 안 남았는데, 또 올 생각에 아쉽지 않은 느낌. 싱가폴 너무 좋아요. :) 

매거진의 이전글 싱가폴, 숙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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