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우연히 "인생이 행복하면 게임은 하지 않는다." 라는 브런치에서 읽게 되어서 그로부터 시작되어 쓰게 된 글이고, 브런치에서는 잘 알리지 않았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은 포스팅입니다 - 제 노마딩 생활만을 아시던 분이시면 아, 그럼 그렇지, 뭐가 있으니까 이렇게 하는거지, 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승리의 쾌감이나 달성의 만족감, 소속 집단 내에서 내 역할이 있고 내가 그 역할을 충분히 이행하고 있다는 충만감은 현실에서 얻기 매우 어렵기에 게임에서 얻는 대리만족은 강한 중독성을 띈다. 현실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고 그에 반해 해당 공간에서의 자신이 인정받는 경우는 그 대비로 인해 더더욱 강한 중독성이 생기게 마련이고.
게임 업계는 이러한 만족감과 승리의 감정은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에 따라오는 반대 급부인 패배시의 좌절감과 피로감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을 해왔다. 스타크래프트에서 LoL로, 그리고 요즘의 오버워치로.
"승리의 쾌감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갖는다. (중략) 그 결과, 아마 자기가 롤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착각하는) 사람이 부지기수 일 것이다. 과거 스타크래프트같은 경우는 반마다 확연한 짱이 존재했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감이 오는가."
(출처: https://brunch.co.kr/@brightlee/7)
(우리가 교육으로 가져와야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좌절감과 패배감을 줄이고, 스스로가 잘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리고 이는 위험포트폴리오의 관리 (risk portfolio management) 의 일부분이고, 이를 삶으로 가져올 수 있다.
"'위험 포트폴리오 관리'라는 용어는 (중략) 사실 주식시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이다. 저자는 사람에게 적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중략) 자신의 한 분야에 리스크를 감수하는 행동을 했다면 다른 분야에는 그보다 훨씬 안정적인 스탠스를 취함으로서 전체 리스크를 경감시키는 관리방법을 행했었다는 것이다."
(출처: https://brunch.co.kr/@brightlee/7)
나는 상당히 안정지향적인 사람이다. 노마딩을 하고 있는 내가 이런 소리를 하면 가끔씩 놀라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분들의 반응을 여러번 보고서야 나도 내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네, 인생을 안전지향으로 산다고 말하는 내가, 다른이들의 눈에는 위험을 즐기는 risk taker 로 보일 수 있을테니.
알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본능적으로 삶에서의 위험관리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중요한 길목마다 운이 따라주어 중요한 성취가 있었고, 조금이라도 risky 한 선택을 하기 전에는 늘 안전한 option 이나 backup plan 을 만들어 두었었다. (물론 최후의 백업 플랜은 근자감과 정신승리지만...)
다행히도 대입때까지는 이게 잘 안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진지하고 심각한 현실 인식이 없었던터라 수능을 거의 떨지 않고 굉장히 여유롭게 치뤘고, 한 것에 비해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어서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 내가 조금 일찍 어설프게 철이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19세때 보는 수능이 이후의 삶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았더라면 ...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로는 (부모님 덕에 갖게된) 영어와 산업체 경험을 자산으로 (요즘의 최대 스펙은 부모라는 이야기에 정말 자유롭지 못한 인생이다) 대학을 졸업 할 무렵부터 여기저기 열심히 두드렸고 (그래도 가진게 있으니 두드려볼 용기가 있었던건지, 워낙 낙천적이고 활발하고 나대는 성격이 발동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10개가 넘는 인턴쉽, 또 다시 10개가 넘는 공모전과 해외봉사에서 떨어지면서도 운 좋게 인턴쉽 (삼성소프트웨어멤버쉽) 도, 공모전 (Microsoft Imagine Cup) 도, 해외봉사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 도 꼭 한군데씩은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받게 되어서 (이매진컵은 3라운드 탈락이지만 거기까지 간 것만으로도 매우 기뻤음) 이것을 다시 자산으로 유학준비라는 risk-taking 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턴쉽/공모전/해외봉사에 대한 준비도 그보다는 한단계 아래의 리스크인 교내아르바이트 (잉글리쉬카페), 조교 (일반교양조교), 동호회 활동 (LanguageCast) 으로 메꾸면서 한 것이 아니었다 싶다.
유학준비를 하면서도 입사를 포기한 상태임에도 인턴쉽은 끝까지 수료하여 마쳤고, 스타트업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조인해서 일을 하고 있었고 (헤드플로우), 본교 대학원에는 입학이 가능하게 한다리를 걸쳐놓고 있었다. 그리고 인턴쉽과 스타트업에 '뽑힌' 경험으로 기업도, 혹시 이번해에 유학이 잘 안 풀리면 다음해 채용에 다시 지원하면 또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근자감도 있었다. (당치 않은 소리다 지금 돌아보면. 무식이 용감이라 득이 된 경우들.)
인생에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게, 어느 하나 미끌어져도 한번 정도는 더 미끌어질 수 있게 risk management 를 해온 삶이었구나, 싶다.
미국에 온 뒤로는 외국인 학생의 불안한 신분으로 백업 플랜 자체를 만들기 어려웠던 그 때, 석사과정에서의 좌절(!)은 그래서 나를 더 힘들게 했었던 것 같다. 동전 하나 뒤집어보면 그래도 아직은 (애처롭게도) 학부 학위와 석사 학위가 보험이 되어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정도로도 안심이 되지 않는 내 가여운 멘탈은 그렇게 달달달 떨고 있었던 것 같다.
외국인 노동자로 살게 된 이후로도 이제는 백업이고 뭣이고, 가능성보다는 내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라고 - 방향 설정은 어느 정도 끝났고 이제는 우직함이 필요하다고 느낀 뒤에는 '노력하지 않는 자' 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당장 3년 내로는 내가 너무 심하게 미끌어 질 일은 없을 것 같지만, 3년 후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미래고 갸냘프게 붙잡고 있는 '커리어' 라는 끈이 행여나 끊어질까 늘 걱정하고 있으니.
'커리어'에 대한 불안함은 (그에 대해 노력하는 대신) 다시 한번 이것 저것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에서 민간인 경력 채용자를 5급으로 뽑고, 그 시험을 LA 에서도 친다는 정보를 알게 되어서 뜬금없이 행시/기술고시 공지를 찾아서 읽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본다던지, 대학에서 강의를 맡을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해야 risk taking 하지 않고 가능할까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던지, 싱가폴에서 Partner Engineer 로 사는 것은 어떨까하고 해당 포지션을 뽑는다는 분은 찾아가서 뵙고, 리크루터랑 면담을 하고 온다던지, 정부 지원의 해외 인재 유치 사업에 해당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 삶은 또 어떨지 등등. 정말 꾸준히 주변을 둘러보고 좋게 말하면 기회가 지나가지 않나 탐색하고 있고, 다르게 말하면 스스로의 가치를 위한 노력보다는 있는 걸로 파먹고 팔아먹을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 (해야하는건 후자이고, 그 다음에 전자를 해야하는데 난 꾸준히 전자만...)
다시 노마딩으로 돌아가, 일반적으로 노마딩에 수반되는 risk 를 나는 거의 다 제거한 뒤에야 노마딩을 시작했다. 신분문제는 영주권으로 마무리지었고, 수입이나 커리어가 끊기는 문제는 원격근무로 해결했다 (게다가 무려 실리콘밸리 회사. 갓프로 감사합니다...) 엇갈리는 시차는 내 체력을 갈아넣어(!) 해결하고 있고, 정착하지 않아 생기는 불안함? 같은건 의외로 없다. 언제든 정착하면 되고 아직은 내 한몸만 건사하면 되는 상황이니까.
스스로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고, 그에 따른 risk management 를 하는 것은 멘탈 관리에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은 인생의 행복에 아주 큰 요소가 된다. 주판알만 튕기다가 세월도 기회도 흘러갈 수도 있지만, 준비되지 않는 채로 맞이한 너무 큰 기회는 잘못하면 내 스스로를 잡아 먹을 수도 있다.
요즘 YOLO 라는 말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고 하는데, YOLO 는 그 문장이 끝이 아니다.
"You only live once - but if you do it right, once is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