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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쿡인노동자 Jul 30. 2017

외국인노동자가 짤리면 어떻게 되나

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약 2주전, 한참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다가 입사 2주년을 맞이했다. 이전 직장이 lay-off 가 굉장히 잦은 업계에 속한 직장이었는데 2년 10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5번의 lay-off 가 지나갔었고 6번째 lay-off 에는 내가 속해있던 팀이 반쯤 날아갔다.


오오미 저 짤림 ㅠㅠ


너무 큰 일이 닥치니까 패닉 후에 나름 차분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 이미 5번이나 똑같은 일을 겪으면서 바로 옆 동료가 떠나는 것도 두번이나 보고나니, 어느 정도 늘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살얼음판을 걸어왔던 것 같기도 하고.


외국인노동자로 일하면서 불편한 것중에 하나가 상황 파악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회사의 분위기가 어떤지, 어떤 일이 생길지, 어떤 루머가 도는지.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는 내향적으로 행동하는 나는 딱히 누가 나한테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그 어떤 이야기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몇몇은 예상하던 레이오프를 나는 전혀 모른채, 심지어 집에서 재택근무하다가 맞았다. 허허허.


그때는 아직 영주권을 받기 전이었고, 외국인노동자비자 상태에 영주권이 한창 막바지를 향해 진행 중이었어서 까딱하면 영주권도 날아가고, 비자까지 날아가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었다. 어떻게 보면 절망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마음은 싱숭생숭해도 바로 바로 할 일들 찾아서 구직 준비를 하고, 이민법 변호사들과 상담하면서 상황 파악을 했던 것은 잘 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면접을 엄청 달렸는데, 한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50개 이상의 회사를 면접을 봤던 것 같다. 하루에 전화 면접은 2-3개 보는 것이 예사였고, 온싸이트도 정말 불러만주면 달려갔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서 전화 면접이 들어와도, 적극성으로 보이면서 내가 직접 찾아가서 1차 면접을 보고 오곤 했었다. 그렇게 찾아간 1차 면접은 거의 다 붙어서 on-site 초대를 받기도 했고.



이게 열흘어치 스케쥴. 남들 근무하는 시간에 나는 열심히 면접을 달려야했다. 그리고 오전에는 몸이 풀리지 않는 특성상, 리쿠르터와의 통화는 최대한 오전으로 돌리고 뭔가 보여줘야하는 통화나 만남은 전부 오후로. 


정말 정신 없었다. 영주권이라도 있었으면 조금 차분히 준비하고 준비가 된 상태에서 면접을 봤겠지만,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그런 시간적인 여유도 심적인 여유도 없었다. 그전에 미리 준비 좀 해놨으면 좋겠지만 ... (그건 지금도 안 하고 있잖아? -.-;;;)


그 와중에 친한 형이 해준 내부추천으로 본 현재 직장의 면접이 제일 먼저 잘 풀렸다. 한숨 놓고 여러곳 더 면접을 보려했으나 의외로 빨리 결정하라는 압박이 내려와서 3일 만에 on-site 면접 4개를 몰아서 본 뒤에 결정을 했다. 지금 직장은 추천해준 형이 워낙 이미지를 잘 쌓아놔서 그런지 굉장히 호의적인 분위기에서 면접을 봤고, ice breaking 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되는 사람들이랑 non-technical 위주로 면접을 봤다. 덕분에 기존 tech stack 을 하나도 써보지 않은 내가, description 상으로는 경력 7년을 요구한다는 senior software engineer position 으로 offer 를 받았다. 


입사 후에야 추천해준 형도 "야 너 senior 였어???" 라고 놀랄 정도. ㅋㅋㅋ 사실 이전 직장에서는 senior 를 굉장히 금방 달아주는 편인데 (나의 경우 대졸 신입으로 들어와서 10개월 만에 senior 를 달았고, 입사 동기 엔지니어 60여명 중에 절반은 1년 내외에 senior 를 달았다) 현 직장은 associate SE - SE - senior SE 로 높은 직급이었는데 같은 직함을 쓰다보니 수평 이동해버린 운좋은 케이스기도 했다. (물론 이 senior 라는 role 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던 나에게는 입사 후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주기도 했지만.)


여튼, 운좋게 오퍼를 받았고 비자와 영주권 문제는 계속 알아보면서 진행을 하면서 약 3주간의 휴가가 주어졌었다. 달라고해서 준건 아니고, 비자를 트랜스퍼하는데 3주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 (심지어 이것도 회사가 잘못 처리해서 출근했다 아직 출근하면 안된다고 해서 1주일 더 쉬다가 출근해서 식겁했다.)


진짜 폭풍같은 8주의 구직기간이었다


그렇게 부디 비자만 어긋나지 않고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였던 내가 이름마저 있는 좋은 지금의 직장에 안착했고, 처음 몇개월은 비자 옮기고 영주권 살려보려고 또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리고 대망의 Day 1. 첫출근이 본사 교육이라 내려갔는데, 심지어 늦잠자서 교육에 늦었다. 정신없이 교육에 늦어서 받고 있는데, 갑자기 인사팀에서 찾더니 아직 비자 트랜스퍼가 안 됐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비자문제는 아주 민감한 이슈라서 여차하면 바로 본국 고고인 사항이다. 한번 그렇게 어긋나면 다시 돌아오기도 매우 어렵고. 정말 패닉이었는데 일단 집에 가서 쉬고 1주일 있다가 다시 출근하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서 대기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다행히 1주일 뒤에는 비자문제가 처리가 됐으니 출근해도 된다고 연락이 왔다.


출근이 1주일 연기되면서 ㅋㅋㅋㅋㅋ 생긴 문제는, 그때 내가 속한 팀 전체가 샌디에고로 출장을 간다는 것이었다. 하아... 출근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상황. 쿨한 매니저가 너 혹시 출장 같이 갈래? 라고 물어봐섴ㅋㅋㅋ 아직 사원 뱃지도 없고 회사에서 컴퓨터도 안 나왔는데, 출장비 집행해서 바로 비행기 티켓이랑 숙소를 끊고 출장을 따라감. ㅋㅋㅋ


출근 첫 날


정말 두달만에 상황이 이렇게 오르락 내리락 했던 것이 불과 2년전이고, 현직장도 그 이후로 두번의 레이오프가 지나가서 여전히 살 떨리는 상황은 여전합니다. 다만, 현직장으로 옮기고 4개월 만에 죽어가던(!) 영주권 프로세스를 살려서 영주권을 받게 된 것이 정말 커-다란 변화이기는 해요. 짤려도 적어도 머물 수는 있고, 천천히 직장을 준비해서 새로 구해도 되는 발판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비자 상태에서 짤려서 출국이면, 집, 자동차, 금융자산 기타 등등 이런 기반 전체를 며칠내로 정리하고 어마어마한 패널티를 물고 쫓겨나갈 뻔한 상황이었는데, 이제 최소한 그런 상황은 지나갔으니.


영주권만 나와봐라- 까지는 아니었지만 영주권이 나오자마자 동부로의 이사를 감행했고, 그 와중에 우연히 원격근무가 가능해져서 노마딩까지 하다가 오랜만에 다시 뉴욕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저도 신기하네요. 지난해 한해 한해가 바로 전해에는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한 직장에 2년 붙어있기 쉽지 않네요


지금도 현재 회사의 상황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라 늘 lay-off 의 위험성을 안고 사는데, 지난 5년간 8번을 겪고 나니 피할 수 없으니 적당히 대비하면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받아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게 정말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되면 안정적인 직장으로의 이직을 알아보고 노력해봐야겠지만요.




짤릴 위험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것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외쿡인노동자입니다. 머물러도 짤릴 위험성은 똑같이 높고, 머물러도 비용은 어차피 높고 ... 이런 경험들이 제가 노마딩하는데 자양분이 된 것도 확실한 것 같구요. 후. 다음에 또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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