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어떻게 원격근무가 가능해졌는지는 한번 포스팅한 적이 있는데, 오늘 내부 기록을 보다가 내 매니저가 바뀐 기록들을 보면서 재밌어서 포스팅.
아래에서부터 매니저를 1, 2, 3, 4 순으로 이야기하자면...
첫 매니저는 나를 뽑은 (아주 고마운) 매니저이기도 하다. 본인부터가 굉장히 먼 곳에 살아서 자주 원격으로 근무를 했고, 들리는 바에 따르면 그냥 엔지니어로 살고 싶었는데 팀에서 누군가 하나가 테크니컬 리드로 올라가면서 매니징을 같이 해야해서 반쯤 타의로(?) 테크니컬 리드가 됐다고 알고 있음.
휴가에 대해서 굉장히 쿨해서 천조국 짱짱맨을 외치게 해주셨었음.
나: 나 하루 휴가 내도 됨?
매니저: 너의 휴가 신청을 거ㅋ절ㅋ한다!
매니저: 그냥 쉬삼. 공식적으로 휴가내지말고 그냥 쉬어. ㅋㅋㅋ
그리고 본인도 쿨하게 겨울 휴가 짱짱 길게 내고 떠나심.
매니저: 나 3주쯤 쉴꺼니까 너희도 각자 알아서 쉬삼. 연말 짱짱맨. 며칠 정도는 보고하지 말고 그냥 쉬어~
이 첫 매니저와 함께 했던 5개월 정도의 기간 동안 입사하고, 팀에 적응하고, 비자와 영주권 문제가 꼬였었는데 잘 풀려서 둘 다 무사히 발급받고, 슬슬 원격이나 동부로의 이직을 생각하고 있을 때 였다. 다만, 아직 뭘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계획도 마음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던 때였다.
그래도 원격근무에 대해서 궁금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겨울 휴가 때 호주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들어가서 휴가 전 1주일 전 정도 발리에서 원격근무를 했었다. 그때 이미 유명해졌던 Hubud 도 방문해서 일을 했었고, 시차 때문에 아시아권에서 co-working space 에서 일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느낌.
첫 매니저는 새해가 오면서 퇴사했다. 당시 원격근무를 많이 하는 직원들 위주로 내보냈다고 들어서 조금 놀라웠다. 그리고 이후에 내가 원격을 시작하면서 이를 알게 된 동료들이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도 있었고.
첫 매니저의 퇴사 이후 한동안 매니저 자리가 공석이었다. 우리 팀은 매니저나 PM 없이도 스스로 잘 돌아가는 팀이었어서 매니저 없이도 굉장히 일을 잘 찾아서 해결해나가고 있었는데 그동안 임시로 매니저의 매니저 (이하 매니저^2) 가 우리 팀을 매니징했다. 알아서 돌아가는 팀이라 큰 이슈가 없었고, 오히려 매니저^2 가 직접 우리 팀 돌아가는 것을 보게 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이때의 매니저^2 는 여전히 나의 매니저^2 이고, 이때 나를 비롯한 우리 팀을 좋게 봐준 것이 훗날 내가 원격근무를 하게 되는데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직접 보고 한달이나마 직접 나를 매니징했으니.
세번째 매니저가 나와 1년 반 가까이를 함께한 매니저이다. 이 분은 사실 우리 팀 매니저가 공석인 상태로 잘 채워지지를 않자, 옆 팀 매니저가 우리 팀을 같이 매니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분은 무려 밑에 엔지니어를 12명? 인가를 매니징하게 되었음.
우리팀은 알아서 잘 돌아가는 팀이었어서 그런지, 이 매니저가 옆팀은 꽤 마이크로 매니징을 해서 가끔씩 원성을 듣기도 했는데 우리 팀에게는 한없이 나이스했다. 그래서 일도 술술 굴러가고 큰 문제 없이 돌아감. 다만, 이때 우리 팀의 두 엔지니어가 퇴사를 하게 되었고 내가 그 타이밍에 (일부러 타이밍 잡은거 아님;) 이사를 알리고 원격근무를 요청했다.
그 당시의 매니저도 매니저^2 도 각각 나를 딱 한달씩 매니징한 상황이었는데 상황이 잘 풀려서 '임시적으로' 원격근무가 시작되었다. 그게 1년 7개월 전. '임시' 원격근무.
그리고 원격을 하는 와중에 팀원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다른 팀에서도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과정에서 내가 원격을 시작하던 시점에 함께 하던 동료들이 현재 30% 도 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3개월 전쯤 3번째 매니저가 퇴사하고 현재의 매니저가 내 매니저가 될 무렵에는 더 이상 '임시' 원격근무임을 아는 사람이 손에 꼽게 남게 됨. 물론, 현재의 매니저는 내가 원래 원격근무를 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있고, 이걸 다 아는 매니저^2 도 온전한 원격근무자로 용인을 해주고 있는 중이다.
원격근무를 하면서 적어도 3개월에 한번은 이런 저런 기회를 만들어 본사에 가서 팀원들이랑 같이 1주일 정도는 시간을 보내고 오곤 했는데, 현재 매니저부터는 회사에서 본사 가는 비용을 처리해준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마무시한 물가를 생각하면 호텔 숙박 비용을 대주는 부분이 완전 꿀. (물론 비행기 비용은 원치 않으나 대준다고 하면 아시아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가는건데도 굳이 뉴욕을 찍고 가야하는 일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서 현재는?
아무도 내가 돌아오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Nobody is expecting me to come back)
온전한 원격근무자가 된 셈. 나라는 exception 이 생기는 바람에 여러번의 레이오프와 병합으로 생긴 현재의 팀에서 팀원들이 WFH 을 마구(!) 쓰고 있으나 나야 원격근무자가 많아지면 더 좋을 뿐.
그 어느 것도 이리되리라 생각지 못했고, 계획하지도 못했던 일인데 여기까지 흘러와서 신기하고 재미있고 좋을뿐이다. 나와 지금의 회사, 팀, 매니저와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늘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만을 바라고 노력 할 뿐.
언제 또 이런 날이 오겠어, 라는 생각을 매일 한다. 그리고 모두의 근무 형태가 이런 식으로 바뀔 날을 꿈꾸고, 또 어떻게 하면 내가 그 날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 중.
마지막 사진은 조만간 올릴 지난 가을 노마딩에서 건진 샷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