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외쿡인 노동자의 노마딩 이야기
노마딩 중 호놀눌루에서도 영화 1987 이 개봉하여(!) 감명 깊게 보고 와서 푸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노마딩과는 (제가 노마딩 중 호놀눌루에서 봤다는 정도 외에는) 관계가 없으며, 영화 1987 의 배경과 (누구라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있다면 꼭 알았으면 좋겠는) 근현대 한국 정치사에 대해서 잡지식을 풀어놓습니다. 틀린 부분은 언제든 지적 바랍니다.
영화 1987 - 이 시대의 우리나라는 일제 치하의 식민지 조선을 보는 것 같다.
당시 상황을 (틀릴 수도 있는 제 지식에 근거하여) 풀어내니, 더 이해하시길 원하시는 분은 다음 키워드들을 검색해보시길 추천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영화 1987의 바탕이 되는 내용.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이렇게 죽거나 고문으로 불구가 됐을까. (그 당시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성공가도를 달렸는지는 링크의 결과 챕터를... 빡침주의.)
보도지침 - 영화에서는 편집장 부장이 칠판에 적힌 내용을 지울 때 등장하고, 영화 택시운전사를 포함 그 당시의 영화 대부분에 나온다. 정부가 토씨하나까지 정해준대로 언론이 받아쓰기를 하도록 하고, 그에 불응하면 신문사를 덮치던 시절이다. 언론통제의 적나라한 모습이고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이현 강사의 '언론이 어떻게 장악되는가' 영상을 보면 '말' 지에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김주언 기자의 이야기가 나오니 보시면 조금 더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맹자가 2300년 전에 말하지. 옳은 걸 '옳다' 라고 말하려면 때때로 목숨을 거는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거야 틀린 걸 이걸 '틀렸다' 말하려면 밥줄이 끊길 각오를 해야 될 때도 있다는거야. 그래서, 그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옳은걸 옳다고 말 잘 못하고, 틀린걸 틀렸다고 말 잘 못한다."
4.13 호헌조치 - 전두환이 신군부의 장기 집권을 위해 '지금까지의 헌법대로 권력을 내가 원하는 대로 물려주겠소.' 라는 발표를 함. 실제 발표 내용 중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이 있다. 말 그대로다. 전두환이 노태우 너 다음 대통령해! 그러면 대통령이 되는 시스템이었고, 그를 유지하겠다고 한 발표.
이한열 열사 - 영화 1987 중에서는 강동원이 이한열 열사로 나옴. 직접 올리지 않고 링크로 대체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교육 받고 살아왔다면 이 사진 한번쯤은 봤었길 바라며.
6월 항쟁 - 4.13 호헌 조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사망 등을 계기로 민주화를 외치던 국민들의 열망이 항쟁으로 터져나오게 되었다. 극중 "호헌철폐 독재타도" 라는 구호를 외치는데, 호헌철폐는 "직선제 요구" 였고, 호헌이 결국 (해오던) 독재를 연장하겠다는 것이었으므로 그를 타도하자는 구호이다. 이미 광주민주화운동을 언론 통제 및 지역 고립으로 소식을 막은 뒤, 폭도들에 의한 폭동으로 조작하여 숱한 광주 시민을 살생한 다음이다.
6.29 선언 - 6월 항쟁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전두환의 후계자로 정권을 이양(!) 받기로 되어있던 노태우가 직선제를 받아들이며 했던 선언이다. 직선제가 뭐냐면 말 그대로 우리가 지금 하는 것처럼 1인 1표로 국민들이 대통령 선거를 해서 대통령을 뽑는 제도이다. 그게 뭔 소리냐고?? 맞게 들었다, 이전까지는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없었고 여당(!)에서 선발한(!) 대표단이 체육관에 모여서(!) 투표를 해서 대통령을 뽑았다. 영화 1987에 보면 정부의 언론 통제에 세뇌 당한 교정직들이 시위대 뉴스를 보며 "아직 우리나라 국민들은 수준이 낮아서 대통령을 직접 뽑으면 안 된다" 는 이야기를 하는데, 관에서 조작을 하는 여론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피 흘리며 간신히 직선제를 쟁취하였으나, 민주화 진영의 김영삼과 김대중의 갈등으로 민주 진영이 단일화 후보를 내지 못했고, 결국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4자로 선거가 치뤄져서 민주 진영의 분열로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 김종필 (8.1%) 를 득표, 신군부 후계자인 노태우가 직선제에 의해 당선된다. 피꺼솟 (...). 관건선거, 부정선거의 의혹이 있으나 양김이 단일화 했었더라면 무조건 이기는 선거였었다.
피꺼솟은 이로 끝나지 않고 다음 대선에서는 친일-군부독재-신군부독재로 이어지는 노태우 라인과 민주계의 양대 거목 중 하나인 김영삼이 (여당 2중대인) 김종필과 함께 3당 합당을 하게 된다 (...) 이로 인해 친일-군부독재-신군부독재로 이어지는 세력과 민주 세력이 합쳐져서 족보가 꼬이게 된다. 이렇게 생긴 정당이 내리고 내려와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을 거쳐 지금의 새누리당이 되는데, 김영삼은 이로 인해 (물론 그안에서 또 치열한 정치 싸움을 해서 올라갔겠지만) 노태우에 이어 대통령이 된다.
저렇게 말도 안되는,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던 가장 큰 두 세력 중 한 세력이 일본 정부와 손을 잡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건 저 당시의 정치문화가 '보스정치' 였기 때문이었다. 김영삼이 '하자.' 한마디하면 그 밑에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줌의 세력이 3당 합당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하며 함께 하지 않았는데 그 중 하나가 부산 지역 초선 의원인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이 당시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해야합니다!" 라고 목이 쉬게 외치는 장면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있다.)
1987 의 앞뒤로 생각나는 내용을, 흐름에 맞게 이해하기 위해서 나름 풀어서 썼는데 누군가에게 한국의 근현대 정치사에 대한 흥미를 일으킬 수 있었으면 좋겠고, 영화의 맥락 이해를 도울 수 있어도 좋겠습니다.
노마딩 중에 뜬금없이 영화에 필 받아서 쓴 포스팅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