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 유현준
내가 만든 ‘공간과 권력의 제 1원칙’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
는 것이다.
<공간의 미래>를 읽었다.
이 책은 여러모로 내 생각을 넓혀준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건축가의 관점으로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을 분석하는데,
와 이걸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감탄을 했다.
책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공간'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에 쓰여진 책이라, 코로나 시대에서 공간을 어떤식으로 대해야하는지 등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 말고도 인간 관계의 공간..? 관계망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는데,
인간의 눈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흰자위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이 사람이 멀리서도 다른 사람이 어디를 쳐다보는지 알 수 있도록 진화된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동물들은 눈동자에 흰자위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디를 바라보는지 멀리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인간이 다른 동물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와 표정을 통해 집단 내에서 의사소통이 잘됐고 따라서 집단의 규모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었던 말은 결국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쓰게 되어 표정파악이 힘들어졌다.. 이긴 한데, 쓰다듬어야 겨우 보이는 강아지의 흰자를 보면서..한번도 이 눈동자의 크기에 대해서 의심해본적이 없는데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 이야기는 책 중반부에도 나오는데, 마스크를 씀으로 인해 소통의 어려움이 발생하고 인간 관계망을 구축하기가 불리하다..는 내용이다.
이 중 정말 재밌게본 내용이 있는데,
마스크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
동양인인 우리는 휴대폰에서 웃는 얼굴을 표현할 때 '^^'로 웃는 눈을 표기한다.
반면에 서양에서는':)'로 웃는 입을 표기한다.
동양은 눈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서양은 입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중략)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마스크를 쓰기 싫어하는 이유도 비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서양 문화에서 마스크는 강도나 쓰는것으로 인식되어있다.
(중략)
압을 가리는 것은 부정적이기 때문에 배트맨, 그린 랜턴, 조로 같은 얼굴을 가려야하는 히어로 캐릭터들도 입을 가리는 마스크를 쓰지않고 눈만 가리고 나온다.
!!!!!!!!!!!!!!!!!!!!!!!!!!!!!!
사실 ^^과 :)에서 오는 동서양 차이는 예시로 너무 많이 들었었는데,
이걸 마스크에 적용해볼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서양인들은 유독 마스크를 안쓴다는 그런 뉴스는 많이 봤었는데..이런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이런 부분들이 나를 계속 깜짝 놀라게 했었다.. (영업 영업)
어쩌다보니 공간이야기는 하나도 못했는데;; 이 책의 주제이니 만큼 어떤 이야기를 해도 공간과 연결된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공간이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주는 제약은 보이지 않게 사람을 조종한다.
이때 공간이 만드는 권력의 크기는 모이는 사람의 숫자와 비례한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는 공간에 의해서 더 큰 권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태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다.
(중략)
사람에게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유를 많이 줄수록 관리자의 권력은 줄어든다.
따라서 코로나 이후 바뀌는 수업의 형태는 기존 학교 건축공간이 만들었던 권력의 구조를 깨뜨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미' 권력을 가진 사람이 더 큰 공간을 가지고, 무언가를 짓는다..는 생각만 무의식적으로 하고있었는데, 거꾸로'공간이 클수록 '만들어지는' 권력의 크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책에서는 교실을 예로 드는데, 교실에는 의자는 모두 칠판을 향해 놓여있고, 교실에 앉으면 수십명의 학생들은 앞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이때 앞에 서있는 선생님이 권력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교실이 아니라 강당일수록, 운동장일수록 권력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확실히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환경에서는 권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가 높을수록, 유튜브 동영상 조회가 높을수록 권력자가 된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바뀌면 플랫폼은 바뀌지만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만들어진다는 법칙은 그래도 유지된다.
잘못 디자인된 공간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는데,
우리나라의 계층 간 갈등의 일정 부분은 잘못 디자인된 공간구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만나는 모든 공간이 인도나 차도같은 이동같은 공간이다.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공원도 없고 길거리에 벤치도 거의 없다.
앉으려면 커피숍에 돈을 내고 들어가야한다.
그래서 서울은 전 세계 단위 면적당 커피숍 숫자가 제일 많은 도시이다.
(중략)
돈이 많은 사람이 5000원을 내고 스타벅스에 들어가고, 적은 사람은 1500원을 내고 빽다방에 간다.
이 도시에는 돈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한 공간에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중략)
뉴욕같은 경우에는 걸어서 10분거리에 공원이 있고 이쪽 공원에서 저쪽공원으로 평균 13분정도면 갈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였는데..
대한민국 전체적으로 잘못 디자인된 건물이나 도시설계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이하게 저자가 앞으로는 이런식으로 공간이나 건물이 디자인되어야 한다며 사진을 많이 넣어놨는데, 이것을 보는것도 쏠쏠한 재미다.)
비교사진으로 뉴욕 타임스퀘어와 서울 가로수길을 보여줬는데, (캡쳐는 안했고 비슷한 사진을 들고왔다.)
보자마자 든 생각은 아니 뉴욕에는 저렇게... 밖에 저렇게;;;;;; 의자가 저렇게;;;;;;;;;;;;;;; 많구나...
'공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대한민국에는 정말 턱없이 부족하구나..
사실 더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많은데.. 이러면 책 대부분을 인용할 것 같아 이만 줄이려고 한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결론은 시대에 맞게, 기술 진보에 맞게, 코로나 시대에 맞게 공간이 재설계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도시 설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너 죽고 나 살자 하는 식으로 공간을 정치적, 자기 이익으로만 대하지 않고, 우리의 미래와 후손들을 위해서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곘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