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너이고 나였지
이글은 유가족이 처리해야 할 각종 세금, 명의 변경 등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원조하는 국가의 적절한 안내와 지원 사업의 부재를 여실히 느끼며 썼던 글입니다.
<6월의 메멘토>
한 주 내내, 아니 한 달 내내인가?
언제부터인 거지?
심장이 두근두근해.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장염에 수면장애가 시작됐단 말이지.
빠지는 체중이 싫어 사탕, 초콜릿을 마구 집어넣곤 있지만, 피부 트러블만 생겨 매일 거울을 보면 번뇌하나 못 이기는 루저 핏의 못난이만 보여 고개를 절레절레.
근데 뭔가 낯익다.
이런 느낌.
이런 컨디션.
이런 표정.
이런 냄새.
조지나.
그래 그게 너이고 나였지.
이제 기억이 좀 날듯하다.
지난 6월을 돌이켜보자.
그땐 그럴만했나?
생각해보면 꼭 그럴 것 까지야.
명의변경, 세무조사 등 시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소름 끼칠 만큼 고요했던 세상.
지난 십 년이 넘게 내 이름보다도 익숙했던 그 이름 석자 대신 각종 서류에 내 이름을 적어놓는 일은 마치 의식 같았던 시간들.
그래 내 평생 내 이름 석자를 그렇게 수백 번 적어보긴 처음이었던 것 같아.
조지나.
낯설다.
언제부터 이 석자가 내 이름이었던 것이고 내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지.
공부할 때처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자.
하나도 빠지는 건 싫으니까.
1. 각종 카드 명의변경
2. 아파트 명의변경
3. 자동차 명의변경
4. 자동이체 결제계좌변경
5.
6.
적다 보니 그 번호가 어느덧 100번을 훌쩍 넘고 있다.
많네.
아직 미처 생각 못한 것들도 있을 텐데.
매일 번호 2개를 지워나가기도 바쁜 하루하루들.
관공서 등을 돌며 형광펜으로 하나씩 지워나갈 때쯤 2시.
아이들이 집에 올 시간이군.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나니 인터넷 명의 변경 등의 시급하지 않은 몇 가지를 빼곤 내 체크리스트는 거의 맞춰져 가는 직소퍼즐 같은 느낌이야.
닳고 닳아 접힌 부분이 찢어질 듯 말 듯.
이것마저 끝내고 나면 나는 뭐가 남을까.
나는 누구일까.
애써 몇 개는 좀 미뤄두자.
그 의식 같은 비장한 시간들을 지내고 나니,
택배에 조차 연락처 2번에 적어놓을 번호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엄마든 오빠든 집 번호든 굳이 채워 넣자면 넣을 수 있는 자리인 ‘연락처 2’.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은 적지 않은 공란.
딱 그 크기만큼 가슴에 새겨진 공간이 좀 아프네.
어, 아프네?
몸이 아픈 건가.
몸이 아픈 거네.
작년 6월의 기억이 조금씩 난다.
그래 내 이름이 조지나였어.
흔한 이름이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많이 적어 내려 간 이름.
근데 지금은 왜 또 여기저기 아픈 건가.
6월이라 아픈 건가.
배도 아프고 자꾸 체하고 동이 틀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아.
6월이 되면 아픈 병이 라도 있었던 건가.
기억이 나지 않아.
증세를 적어보자.
나는 의심도 많고 하나라도 빠지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으니.
어떤 때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지 전조를 적어보면 대비할 수 있을 거야.
일단 1번.
가끔은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올 때
2번.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투덜거림 조차 부러워져 서러울 때.
3번.
아니지.
이런 건 체크리스트로 만들지 말자.
어차피 내년 6월이 되기 전엔 또 기억나지 않을 병일 테니.
틀림없이 7월이 되면 사라지는
6월이라는 병일 테니까.
아.
내 이름이 뭐더라?
조지나.
그래 그게 너이고 나였지.
이제 기억이 좀 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