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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Jun 21. 2020

6월의 메멘토

그게 너이고 나였지

이글은 유가족이 처리해야  각종 세금, 명의 변경 등에 혼란을 겪지 않도록 원조하는 국가의 적절한 안내와 지원 사업의 부재를 여실히 느끼며 썼던 글입니다.




<6월의 메멘토>



한 주 내내, 아니 한 달 내내인가?
언제부터인 거지?
심장이 두근두근해.
설사와 구토를 동반한 장염에 수면장애가 시작됐단 말이지.
빠지는 체중이 싫어 사탕, 초콜릿을 마구 집어넣곤 있지만, 피부 트러블만 생겨 매일 거울을 보면 번뇌하나 못 이기는 루저 핏의 못난이만 보여 고개를 절레절레.
근데 뭔가 낯익다.
이런 느낌.
이런 컨디션.
이런 표정.
이런 냄새.

조지나.

그래 그게 너이고 나였지.
이제 기억이 좀 날듯하다.


지난 6월을 돌이켜보자.
그땐 그럴만했나?
생각해보면 꼭 그럴 것 까지야.
명의변경, 세무조사 등 시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니 소름 끼칠 만큼 고요했던 세상.
지난 십 년이 넘게 내 이름보다도 익숙했던 그 이름 석자 대신 각종 서류에 내 이름을 적어놓는 일은 마치 의식 같았던 시간들.
그래 내 평생 내 이름 석자를 그렇게 수백 번 적어보긴 처음이었던 것 같아.

조지나.

낯설다.
언제부터 이 석자가 내 이름이었던 것이고 내 이름이 아니었던 것이지.
공부할 때처럼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자.
하나도 빠지는 건 싫으니까.

1. 각종 카드 명의변경
2. 아파트 명의변경
3. 자동차 명의변경
4. 자동이체 결제계좌변경
5.
6.
적다 보니 그 번호가 어느덧 100번을 훌쩍 넘고 있다.
많네.
아직 미처 생각 못한 것들도 있을 텐데.
매일 번호 2개를 지워나가기도 바쁜 하루하루들.
관공서 등을 돌며 형광펜으로 하나씩 지워나갈 때쯤 2시.
아이들이 집에 올 시간이군.

그렇게 6개월을 보내고 나니 인터넷 명의 변경 등의 시급하지 않은 몇 가지를 빼곤 내 체크리스트는 거의 맞춰져 가는 직소퍼즐 같은 느낌이야.
닳고 닳아 접힌 부분이 찢어질 듯 말 듯.
이것마저 끝내고 나면 나는 뭐가 남을까.
나는 누구일까.
애써 몇 개는 좀 미뤄두자.

그 의식 같은 비장한 시간들을 지내고 나니,
택배에 조차 연락처 2번에 적어놓을 번호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엄마든 오빠든 집 번호든 굳이 채워 넣자면 넣을 수 있는 자리인 ‘연락처 2’.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은 적지 않은 공란.
딱 그 크기만큼 가슴에 새겨진 공간이 좀 아프네.
어, 아프네?
몸이 아픈 건가.

몸이 아픈 거네.


작년 6월의 기억이 조금씩 난다.
그래 내 이름이 조지나였어.
흔한 이름이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많이 적어 내려 간 이름.
근데 지금은 왜 또 여기저기 아픈 건가.
6월이라 아픈 건가.
배도 아프고 자꾸 체하고 동이 틀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아.
6월이 되면 아픈 병이 라도 있었던 건가.
기억이 나지 않아.
증세를 적어보자.
나는 의심도 많고 하나라도 빠지는 것은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으니.
어떤 때 이런 증세가 나타나는지 전조를 적어보면 대비할 수 있을 거야.

일단 1번.
가끔은 내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올 때
2번.
사람들이 싫다고 하는 투덜거림 조차 부러워져 서러울 때.
3번.

아니지.
이런 건 체크리스트로 만들지 말자.
어차피 내년 6월이 되기 전엔 또 기억나지 않을 병일 테니.
틀림없이 7월이 되면 사라지는
6월이라는 병일 테니까.

아.
내 이름이 뭐더라?
조지나.

그래 그게 너이고 나였지.
이제 기억이 좀 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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