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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Jun 27. 2020

뺨좀 맞아 보자

싸가지 없는 졸부


지식이 지혜를 넘으면 싸가지가 없고
지폐가 지혜를 넘으면 졸부가 되나니
내가 싸가지 없는 졸부가 되면
내 뺨을 때려주오.


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제일 쓸데없는 자랑이 지식과 지폐 자랑이라며, 사업자 대출이며 아파트 대출에 가계부채가 수억에 육박하던 시절에도 딱히 숨 막혀하지 않았고, 많이 가진 이가 부럽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자신감이 넘쳤던지 쫓아갈 빚도 있어야 돈 버는 재미도 있는 거 아이가! 하는 철없던 소리도 해댔지. TV 어느 건설 회사 광고 카피를 패러디 해 ‘빚이 많아. 밝은 세상. 만들어가요’를 불러가며 출근 준비를 하는 요상한 청춘. ‘필수적인’ 소비보다 ‘즐기는’ 소비 성향을 구사하는 세상 물정 감 없던 그 시절의 나. 그게 나였다.

지식이라고 뭐가 다를쏘냐. 써먹을 지식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외쳐되며 그때그때 필요한 공부만 딱 써먹을 만큼 벼락치기. 해외여행 한 번이 전부인 영어실력으로 운 좋게 만든 공인시험 점수를 가지고 여러모로 요긴하게 써먹고, 사법고시도 낙방한 주제에 법인 설립에 노무 관리까지 두루두루 꾹꾹 써먹던 조잡한 지식이란. 지금 떠올리면, 민망하고 부끄러운 소박한 지식들. 잡스러운 계집애 같으니.

하지만 잡스러운 지식으로 고맙게도 밥벌이를 하였고, 내가 가진 지식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내 밥벌이와 ‘원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도움 정도. 지식과 지폐만큼 자랑하기 시작하면 재수없는 것도 없다. 사람들과 만나 여러 가지 모임을 하며 경계했던 두 가지는 첫째, 묻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먼저 풀어내지 않기. 둘째, 물질로 베푸는 호의가 호의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것이다.

관심 없는 분야의 설파만큼 얼마나 지루한 자리가 있겠으며, 상대가 그 분야에 얼마나 깊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내 지식을 자랑하는 만큼 민망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지폐로 상징되는 부도 그러하다. 호의라는 이름으로 베풀어 주는 배려는 나의 상황에 따라 호의 이기도 했고 호의가 아니기도 했다. 때론 마음의 짐 또는 은행에 다달이 넣어줘야 할 대출보다 훨씬 무거운 빚처럼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심지어 친밀함이라는 관계 형성이 채 만들어지기도 전에, 가진 자산, 가진 지위 등에 노출이 심한 사람들은 친밀감 이전에 신뢰감마저 찾기 힘들었다.

나는 이제 바야흐로 소득세 0을 기록하는 무노동 무임금의 삶으로 접어들었다. 어설픈 지식 자랑할 자리도 없을뿐더러, 원래도 없었지만 지폐는 씨가 말라 자의 반, 타의 반 겸손해지고 있다. 이제는 마이너스통장 몇백으로도 목구멍에 박힌 가시마냥 신경이 쓰이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혼자 끌어가는 가정의 몇백의 마통이 둘이 같이 벌며 같이 짊어지던 수억의 빚보다 힘겹게 느껴진다. 가끔은 통장에 찍힌 마이너스 부호는 지금의 내 인생의 상징같아 온갖 청승을 떤다. 쓸데없이 잡다했던 지식을 끌어다 자격증으로 승화시키려고 보니 깊이 있는 쓸만한 지식하나 찾아보기 힘들고 암기 두문자 열개 외우기도 벅차 책상에 머리를 콩콩 박는다. 싸가지 없는 졸부가 되면 내 뺨을 때려달라는 호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지식이 오만오천개가 쌓여 싸가지가 없던가 지폐라도 넘쳐 졸부라도 되어 뺨이라도 맞아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망한다.

지식이 지혜를 넘으면 싸가지가 없고
지폐가 지혜를 넘으면 졸부가 되나니
내가 싸가지 없는 졸부가 되면
내 뺨을 때려주오.

<그렇다고 너무 세게 때리진 말고
  살살 타일러 주세요>



이렇게 맞으면 기절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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