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흘려보내기
운전면허를 따고 몸에 익어 반사적으로 핸들을 돌리는 시기는 한 3년쯤 지난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더 이상 차선 바꾸는 게 신경 쓰이지 않고 고속도로를 제법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여유가 생기고, 완벽한 평행주차에 으쓱해하며 내릴 땐, 길가에 서서 자판기 커피에 담배를 피우며 바라보던 와이셔츠 부대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같이 출발해서 각자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면 항상 가장 먼저 도착하여,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여유도 한껏 부렸다. 이맘땐 꽤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 나는 베스트 드라이버에 굉장히 매너 좋은 운전자인 것만 같았다.
상습 가운데 손가락 사용자
자신감이 상승할수록 매너가 없는 운전자에 대해 욱하는 빈도수도 늘어났다. 왜 우회전하는 바로 그 자리에 정차를 하는 것이냐, 왜 깜빡이 없이 칼치기를 하는 것이냐. 왜 차선을 물고 주차를 하는 것이 냐. 이런 사소한 불평에서 시작한 욱 지수는 심지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다가 두 손으로 날리고 그것도 부족해 양손으로 번갈아 마구마구 날리는 통에 화가 난 상대차가 무섭게 쫒아오는 이벤트를 겪기도 했다.
일방도로에서 역주행하며 순찰도는 경찰차를 정면으로 대치하여 눈썹을 씰룩이며 “일방도로거든요? 안 비껴드려요”라고 하자 웃으며 좀 비껴줘요 라고 했던 경찰분은 며칠 후 아파트 주차장에서 또다시 역주행으로 순찰을 돌다 나와 대치하자, 창문을 내리고 또 아가씨냐며 안면을 트고 웃는 일도 있었다. (아가씨라고 해서 진심 환한 미소로 기꺼이 비껴드렸다)
운전 경력이 쌓여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운전 중에 욱하는 빈도는 급격히 줄어갔다. 밤중에 이면도로 정면을 가로로 차지하고 걸아가던 여고생들에게 귀엽게 빵 하고 비껴달라 티를 내니, 놀란 학생 하나가 무섭게 노려보며 “아이 씨발년아 깜짝이야”라고 하길래, 창문을 내리고 그 옆을 지나가며 “학생. 놈이 아니고 년인지 어떻게 알았어? 선팅 까매서 안보이지 않아?”라고 물었다가 미친년 소리도 추가되는 일도 있었다. 그만큼 운전 중에 화가 나지도 웬만해선 욱하지도 않았다.
세상의 시선, 그리고 편견
3년이라고 생각한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신변이 익숙해질 때쯤 사소한 말들과 편견들이 들리고 격하게 분노하는 시기 또한. 세상은 아이들을 혼자 키우는 여자를 약자로 여기고, 약자가 항상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적극적으로 취하는 존재로 간주한다. 최근엔 그런 세상의 시선에 매번 분노하고,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말들에 짜증이 밀려왔다. 가운데 손가락을 양손으로 면상에 날리던 운전 3년 차의 나처럼 따끔한 몇 마디를 해주고 싶어 며칠 머리를 쓰기도 했다.
부질없다.
그런 짜증이 나에게 어떤 해소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세상의 편견 또한 바뀌지 않을 것도 알만큼은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일상의 작은 분노들로 나를 잠식시키는 과오는 더 이상 범하지 않는다. 분노를 내는 것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에게 밝은 인사 한마디를 건네고, 택배를 들어다 주시는 경비아저씨에게 음료수 한잔을 건네고, 쓰레기를 버겁게 들고 가는 학생의 박스 하나를 들어주는 일. 운전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고 미친 듯이 경적을 울리기보다, 차선을 헤매는 운전자에게 길을 내어주는 게 훨씬 마음을 가볍게 한다. 나를 윤택하게 한다.
잠 못 이루는 하루 밤을 뒤로하고 이제는 세상의 펀견에 가득한, 안 보면 그만인 사람들의 말들에 내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내어주는 초보 운전자의 거만함 따위는 다시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어쩌면 그런 자극들에 내가 욱할 거라 생각하는 세상에 하트를 날려주는 것이 진정 엿을 먹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요 없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더욱 내 사람으로 만드는데 열정을 쏟는 것이 훨씬 건강한 인생이지 않을까.
여전히 밥은 맛있고 좋아하는 젤리는 넘치고 한 풀 꺾인 시원한 바람이 제법 기분 좋은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