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야 나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부러움이 없다.
이 문장이 40세 정진아를 대표하는 문장이다. 그녀는 딱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것도, 뛰어난 머리로 영재 소리를 들은 것도, 누구나 한번쯤 뒤돌아보게 하는 외모를 소유한 것도 아니다. 단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회적인 성취를 이룬 그 시대의 존경받는 아버지와 친구들마저도 좋아하는 현명하고 친구 같은 어머니 밑에서 자존감이 탄탄한 성인으로 자랐을 뿐.
딱히 부러움이 없다. 넘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환경 속에서 적당히 누리며, 적당히 대우받으며 적당히 살아왔기 때문에 넘치는 무언가에 대한 커다란 열망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 서로 관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는 현실 남매들 사이에서, 맥주잔을 부딪히며 고민과 번뇌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오빠마저도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살아온 정진아는 제법 베풀 줄도 안다. 작은 기부 활동을 하고, 위기를 겪는 친구를 새벽에도 한걸음에 찾아가 달래기도 하며, 그렇게 쌓아온 많은 친구들은 집안 천변에 앉아 시답잖은 수다와 장난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리게 해주는 행복의 요소로 자리 잡는다.
건강한 삶의 습관도 갖추었다. 6년이 넘게 새벽바람을 맞으며 6킬로를 달려온 조깅은 매사 부정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감정들을 쿨다운시키며,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부족한 수면을 버티고도 늘 웃는 얼굴로 사람을 대면할 수 있는 삶의 위기관리 장치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가정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라왔다는 사실이 현재의 그녀가 높은 자존감을 보유하고 타인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몰입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는 것을. 지금의 정진아를 만든 것은 모두 그 덕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그녀는 자신이 이룬 가정이 매우 뿌듯하다.
누구나 다 그러하다는 다달이 은행에 월세를 내는 평범한 집에, 매달 잠시 통장을 스쳐간다는 월급쟁이 남편과 뒤돌아 서면 집안의 모든 물건을 폭탄 삼아 터트리는 두 아들에, 매일 야근에 쪽잠을 청하는 직장이 있는, 넘칠 것도 부족할 것도 없는 그녀의 가정이 그녀에겐 원동력이고 자부심이다.
그도 그러할 것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녀에게 부러움을 표현했던 것이다. 부엌에서 동선이 꼬이면 미리 짠 것도 아닌데 동시에 샅바를 잡는 죽이 잘 맞는 남편과 매사 짜증 없이 얼굴에 행복을 뿌리고 나니는 두 아들은 그 자체로 예쁜 그림이다. 그녀는 일상을 SNS에 남기며 소소한 행복을 기록하는 게 작은 취미이다. 행복한 표정은 거짓으로 만들어 지기 힘들기 때문에 지인들의 반응도 좋다. 그녀의 남편은 매번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금 삶이 너무 완벽하다고. 곧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그녀는 행복하다. 그녀를 행복하게 하는 가족과 그녀로 인해 행복한 가족이 있으므로.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조지나를 만난다.
모든 것이 부럽다.
이 문장이 41세 조지나를 대표하는 문장이다. 조지나는 남편을 잃었다. 림프종 판정을 받고 투병하던 그 세월을 지켜보며 정신은 피폐해지고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하루하루 처리해야 할 명의변경부터 세무와 은행업무까지 한 가지를 처리할 때마다 세 가지가 쌓이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학교를 입학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녀의 전화기는 쉼 없이 울려댄다. 입맛을 잃은 지 오래된 그녀는 끼니를 준비하는 중에도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괴롭다. 아빠의 부재를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일선으로의 복귀를 포기하고 혼자서도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자격증 준비를 선택한다. 수면제가 없이는 잠을 이룰 수 없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그녀에게 외부와 차단된 수험이라는 환경은 그녀를 더욱 어두운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소위 말해 환자에겐 최악의 선택이었다.
그래도 그녀에겐 고마움을 넘치게 표현해도 부족할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은 홀로 지내는 그녀를 위해 같이 여행을 가주기도 하고 집 앞에 찾아와 맛있는 음식들을 먹인다. 직장의 고뇌와 남편의 게으름을 투덜거리는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대화 속에서도 그녀는 부러움에 서러움마저 느낀다.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챙기는 부부의 기념일이 부럽고, 건강검진을 따라가 주는 남편의 운전이 부럽고, 아이를 맡기고 나올 수 있는 이 시간의 여유가 부럽고, 무엇보다도 오늘 아이의 어처구니없었던 대화나 유난히 예뻤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내 마음처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부럽다.
혼자 보기 아까운 두 아이의 예쁜 사진을 어디에 보내야 하나 매번 그녀의 손은 민망하다. 약속이라도 잡으려면 두 아이를 챙겨줄 누군가를 찾는 게 번거로워 이내 포기한다. 건강검진을 하던 날은 마취에 취해 운전할 수가 없어 병원 의자에 한참을 기대앉아 풀이 죽은 어깨를 지고 운전을 한다. 조금만 올려봐도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부러워 그녀는 매사 고개를 숙인다.
너무 부족하다. 앞으론 더 부족하겠지. 실패한 인생 같다. 남들은 당연히 가지고 누리는 것들을 그녀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 같다. 혼자 아무리 발버둥 처도 아이들이 늘 부족할까 지레 두렵고 그런 두려움은 매일 그녀를 잠 못 들게 하고 아프게 한다.
41세가 된 정진아는 이런 조지나가 찾아오는 것이 몹시도 싫다.
늘 애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 나타나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그녀를 만나는 게 무엇보다도 싫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리 싫다고 해도 늘 찾아왔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기로 결심한다.
안녕? 난 정진아라고 해. 반가워.
우리 시작은 별로였지만 아무래도 너의 이야기를 듣고 너를 마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쩌면 너도 나일 테니. 어쩌면 처음부터 너도 나였을 테니. 이제 와서 만나게 된 네가 아니라 아마도 태어나던 순간부터 너도 나였을 테니.
가장 두려운 얘기를 먼저 해보기로 하자. 무엇이 가장 두려워?
조지나는 덤덤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감는 순간에 내가 혼자일까 두려워. 아이들에게 나는 너무 부족한 엄마 같아. 이제 준비하는 인생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가족의 도움이 있어도 쉽지 않은 준비인데 내가 혼자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난 이미 실패한 사람 같아. 매일 울고 매일 힘들다며 징징거려. 내가 아플 때 아이들을 보살필 수 없을 까 봐 무섭고 친구들의 호의마저도 가끔은 화가 나. 모두 다 가진 자들의 투정 같아서 호의를 호의로 받지 못하는 나의 작은 마음에도 화가 나. 더 열심히 살 걸 그랬어. 그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믿었거든. 지금의 난 매일매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도 너무 버거워. 난 아무것도 아니었나 봐.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님과 남편이었나 봐. 내가 잘하는 것만 할 수 있게 해주었던 그들의 배려와 사랑으로 만들어졌나봐.
이제 그만 울자. 아니지 울고 싶으면 울고 숨이 차면 숨이 차다고 하자. 일단은 병원에 가서 마음과 몸을 추스르고, 집안일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보자. 몇 년 뒤로 간다고 앞으로 가는 게 늦어지는 것도 아니야. 너 좋아하는 글도 틈틈이 쓰고 이제 조깅은 아니더라도 걷는 것부터 해보자. 이제는 같이 해보자.
그렇게 정진아는 조지나를 매일 만난다. 어떤 날은 여러 번, 어떤 날은 만나는 것을 잊기도 하며 이제는 제법 친구처럼 만난다. 가끔은 반갑지 않게 가끔은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기도 한다. 만나보니 그녀도 꽤 괜찮은 사람이다. 아니 가끔은 더 괜찮은 사람이다. 좀 더 솔직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더 잘 이해하는 타인의 마음에 더 깊이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녀를 만나보니 자존감이 높았다고 생각했던 정진아는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이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생각한다. 너를 만나서 조금은 다행이다. 어쩌면 만나지 않았어야 가장 좋은 인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만난 것이 나쁘지 만은 않다. 이제는 인생의 가장 나빴던 순간도 가장 좋을 순간도 너와 같이 하고 싶다. 너로 인해 알게된 깊은 마음이 있으므로. 평범해보이는 삶속에 저마다가 이겨나가는 고민과 슬픔들을 함부로 재지 않는 너를 알게 되었으므로.
너를 만나야 진정한 나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덧. 조지나는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입니다. 매사 열심히 조진다는 의미로 비속어를 써서 지어주었던 별명인데, 어찌 필명으로 사용하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되었네요. 오늘도 열심히 책을 조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