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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나 Feb 09. 2021

낙서장 휴지기

검은 동물 저장소: 낙서장


2년 전 만났던 의사 선생님은 약한 정도의 약을 처방하시곤 글쓰기를 당분간 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제가 글을 그렇게 못쓰나요?라고 시옷자 눈썹을 씰룩이고 입술을 뾰로뚱 모아 묻자, 선생님은 제법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요 글이 온통 자기반성의 글이잖아요. 반성하지 말고 살아보세요. 적어도 당분간은.

은근히 보기보다 모범생인 나는 그래도 착실히 말을 들었던 것도 같은데,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유독 힘들었던 날의 혼자가 되는 밤 시간엔 다시 습관처럼 낙서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나는 울컥해서, 화나서, 때론 슬퍼서 보여주기 힘든 내 속마음을 털어놓고 그 시간을 온전히 견뎌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는 상당히 오랜 세월 가지고 있었던 습관이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왜인지 나는 가끔 혼자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항상 잘 웃는 것이, 가끔 예민하고 날카로운 학창 시절의 어느 패거리에겐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을 만큼, 웃는 낯에 짜증과 고민이 없어 보이는 외모가 가족들에게도 여느 가정마다 있는 힘든 시기에 조차 오렌지빛 밝은 색을 가진 막내딸의 디폴트 값이었던지라, 내가 가진 고민이나 괴로움을 표현하는 것이 무척 난감했다. 내 얼굴과 성격에 내속의 검은 동물을 스스로 가둬버린 것이다.

그 검은 동물을 가두기엔 글이 가장 만만했다. 보는 이 없고, 같이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감정들까지 바닥을 다 긁어내 보여주어도 나에게 실망하는 일 따윈 없으니.

평생 낙서를 했지만, 거의 매일 쓰던 시기, 일 년에 한두 번 쓰는 시기, 즐거운 이야기를 쓰는 시기, 온통 자기반성과 성찰로 가득한 시기, 불신으로 가득한 시기. 아주 오그라드는 깜찍한 글들로 가득한 시기. 그 내용도 다양해서 가끔 그 시절의 내가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거나,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 둘러보는 버릇도 생겼다.  그땐 웃음이 피식나기도 하고 그 시절이 못내 그리워 쓰디쓴 물약처럼 씁쓸함이 오래 남아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요즘은 낙서를 잘하지 않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 늦은 밤까지 혼자 번뇌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생각의 노력을 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편이 가까운 이유일지 모르겠다. 생각의 노력은 가끔은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과 맞닿아 그 힘을 잃어갔다. 삶이 다채롭고 관계가 풍요롭던 시절의 검은 동물은 낙서에서 조차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잠을 잤다. 하지만 지금의 검은 동물은 그저 움직이는 것을 포기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단지, 걱정인 것은 내 안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검은 무언가를 낙서로 가두지 않으면, 그 그림자가 낯빛에 드리울까 겁이 나는 것일 뿐.


<낙서장 휴지기>


#브런치글쓰기안하고
#넷플렉스본다는변명을
#이렇게또길게한다
 

제목만 쓰고 쓰지 못한 글도 많고 한달에 두어번이 이젠 전부이다. 그냥 게을러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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