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지나 Aug 21. 2022

철옹성 같은 4인 가족

나의 찌질함과 결핍에 대한 고찰


나의 해방 일지의 한 장면.


여자들이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쇼핑을 하는 장면에 이어, 여자들이 모여 다니는 게 그렇게 보기 싫다는 친구에게 기정은 대답한다.


“나는 무리 지어 다니는 여자들보다, 4인 가족이 더 꼴 보기 싫어. 어우~~~ 그 철옹성”


얼마 전 30년 묵은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을 했다. 주요 안건은 추석에 여행을 가는 내용이었는데 듣는 내내 나는 시큰둥했다. 해마다 명절이면 무언가에서 도망치려는 듯 여행을 잡는 것이 올해는 유독 마음이 가지 않았다. 사이판이니 강원도니 비용과 절차 등을 얘기하며 여행이 거의 기정사실이 되어갈 때쯤 나는 물었다.


“3인 가족도 아니고 4인 가족이 왜 철옹성이야?”


신기하게도 오래된 친구들은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반응해준다.


“ 나한테 남편이 있다? 나한테 아내가 있다? 는 당연히 디폴트 값이고 아이가 하나이면 뭔가 큰아이에게 부모로서 동생을 만들어주지 않은 부모의 죄책감이 있고, 아이가 셋이면 좀 버거워 보이고,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유독 4인 가족이 부부로서 부모로서 역할을 다한 것 같은 완전체의 느낌으로 다뤄지고 그들도 마치 주류인 거 같은 우쭐함이 있지 않나?!”


아 그런가? 어딜 가던 4인 가족의 모습은 무언가 완벽하고 번접할 수 없는 그림 같아서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그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철옹성의 느낌이 들어서인가?. 생각해보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도 펜션 주인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 데리고 엄마 혼자 힘들게 아빠는 왜 안 왔냐 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꽤 있었던 것도 같다.


이 오래된 친구들만 해도 대략 수년 전의 모습은 오래 연애를 하고 있던 한 친구만 빼고 모두 ‘철옹성’ 같은 4인 가족이었다. 모임은 대부분 아이들이 모두 모이는 14인의 큰 모임이었고, 당연히 가족들만이 같이하는 명절과 연말은 피해서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의례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항이었다.


몇 년 사이 기러기 아빠이던 친구는 눈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를 시전 하며 이혼을 했고, 선과 짧은 만남으로 초고속 결혼을 했던 친구는 몇 년 동안 별거와 상담을 반복하다 결국 이혼을 했고, 그 사이 나는 사별을 하고.

그 짧은 몇 년 사이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철옹성은 마치 전생의 모습처럼 아득해졌다.


이제는 모두 명절이며 연말이며 그냥 지내기는 민망해져 버린 시간 속에 그 철옹성들이 모여드는 자리와 장소을 피해 늘상 피난을 갈 생각을 한다. 이혼한 친구들은 부모님들의 잔소리와 쓸쓸함을 피해, 그리고 나는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눈빛을 피할 피난처를 찾지만 결국 찾게 되는 것은 철옹성을 쌓지 못한 친구들이었다. 아마도 우리는 언제부턴가 스스로 ‘비주류’ 임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수년 전에도 지금도,  주위엔 4 가족의 철옹성을 쌓은 친구들보다 어떤 형태로든 대한민국에서 ‘비주류 분류되는 가족의 형태를 이룬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지금 그들을 바라보면 모두 하나하나 너무 빛이 나고 다정해서 가끔은 정말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4 가족이라는 철옹성을 주류라고 느끼는 안전함으로 포장해 정작 성장하지 못한 것은 내가 아닐까. 당시 느껴지는 행복감과 만족감과는 별개로 나는 스스로  가족의 형태를 ‘완전체 느끼는 철옹성을 쌓고 있지 않았을까.


남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잘되어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내 행복과 성장을 그들에게 투영하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나의 눈에는 4인 가족이 철옹성처럼 보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말인즉슨 여전히 나는 그 철옹성을 보면서 쓸쓸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비루한 존재라는 것이다.


결핍의 심리도 습관이라는 말을 보았다. 분명 4인 가족일 때와 지금은 형태가 달라졌을 뿐인데 어느 순간 결핍은 나에게 습관처럼 젖어든 축축하고 찝찝한 옷처럼 청승이 되어있다. 늘 삶에서 회피, 도망, 부인의 악순환을 반복하며 나 스스로 깨지 못할 철옹성들을 여기저기 쌓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명절에 무언가를 피해 숨어드는 것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온전히 3 가족만의 명절 행사를 만들어보거나 아부지의 한탄 섞인 한숨을 들으러 가볼까 한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술 한잔 하며 이제 걱정은 그만하시고 다 늙은 딸 어디다 붙일 생각 좀 그만하세요.라고 얘기해보려고.


분명히 꼬꼬마들과 나는 우리 셋이 온전히 철옹성 같은 역사를 다시 써볼 수 있지 않겠어. 내 행복이 있는 그곳이 분명 철옹성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늙어서 오히려 좋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