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근, <당신과 당신의 도서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 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청년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청년들은 자신이 실존과는 무관하게 생존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어야 할 참이다. 양질의 일자리와 현실적 선택에서 갈팡질팡하는 청년들은 세상에 당당하지 못하다. 삶을 영위하고 꿈을 좇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정말 '숨'만 쉬어도 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노오력' 하는 일뿐이다.
한때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포기한 청년들을 일컬어 '삼포 세대'라 불렀다. 세 가지만 포기했던 그 시절은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집과 경력을 포기했다고 해 오포 세대가 됐고 눈 깜짝할 새 7포 세대가 됐다. 지금은 그냥 N포 세대라 부른다.
N포 세대가 나약하거나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실패는 그들의 노력까지 폄훼한다. 노력은 어느새 포기가 되고, 포기는 다시 체념이 됐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달관 세대'가 됐다.
<당신과 당신의 도서관>(이하'당당 도서관')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용덕'과 그와 관련해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다룬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멜로 웹툰이다. <반짝반짝컬링부>로 알게 된 곽인근이 그린 웹툰으로 잔인하게 혹은 잔잔하게 와 닿는 촌철살인의 문구들이 N포 세대의 마음을 대변한다.
거듭되는 임용고시 낙방에 결혼을 할 줄 알았던 여자 친구 영미와 이별한다. 용덕은 이제 도서관에서 만나는 사람들 아니면 외부 친구들과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 꿈을 꾼 대가로 당당함과 이별했고, 세간의 평가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용덕은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언제부터 자신의 꿈이 임용고시를 통과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을까 하고.
그러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당당한 안나를 만난다. 안나는 그 누구보다 자신과 세상에 당당하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용덕이 안나는 어쩐지 눈에 밟힌다. 그렇게 서로 티격태격하며 싸우다, 정이 들어버린다. 뭐, 멜로라는 장르에 충실히 따른 뻔하디 뻔한 클리세다. 용덕은 그 해 임용고시 1차에 합격한다. 왜 선생님이 되려고 했는지 확고한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어쨌든 1차에는 합격한 것이다.
묘하게 클리셰를 비트는 곽인근 작가답게 용덕은 2차에서 낙방한다. 그래도 용덕은 예전만큼 자괴감이 들거나 외롭지 않다. 지옥같이 싫었던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하는 것도 이제는 담담하다. 안나도 그가 합격하는 것보다 시험 보는 이유를 찾을 때까지 그의 곁에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당신과당신의도서관>을 보면서 나는 내 주변 인물들이 수없이 중첩됐다. 그들도 '용덕'과 같이 임용고시를 준비하거나 어디선가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당당해지는 방법은 임용고시에 통과하는 길뿐이다. 바늘구멍보다 좁은 문턱을 넘기에는 너무나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자신의 노력 여하와 상관없이, '숫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폭탄 돌리기 같은 시험의 현장에서 누군가가 웃는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운다. 물론 우는 이가 대다수다.
곽인근의 전작인 <반짝반짝컬링부>의 마지막 화의 소제목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도전에 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이다.(이는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는 소설에서 나온 문구다)
그들도 그들이 선택한 도전에 의해 절망할 권리가 있다. 눈물을 흘릴 권리도 있다. 그러나 마냥 울고만 있을 '권리'는 없다. 나아가 세상이, 시선이,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의무'가 있다. 절망에서 벗어날 의무다.
좋든 싫든 그들은 눈물을 닦고 다시 담담하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그들이 당당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