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0일 제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공식 취임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만의 독특한 'winner take all' 투표 제도가 낳은 결과물이다. 미국 국민들은 위험한 도박을 시도했다. 이 도박에서 미국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세계 역사의 소용돌이가 변화를 원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미국 외 국가들이 미국 대선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인류가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의 영향력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의 짙은 그늘에서 온건한 힐러리가 패하고 강경한 트럼프가 당선된 것에 수많은 국가와 사람들은 불안과 우려를 쏟아냈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국정 철학과 인생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여기에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반발하고 있는 태세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롭다. 트럼프가 미래에 어떤 인물로 기록될지는 모르겠다. 현재까지만 보면 분명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다. 처음과 달리 그의 행보가 마냥 고깝게 보이지만 않는 데는 미국 사회의 오래된 폐단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한 사회에서 투표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그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사회가 지금 현재, 오늘 추구하하고 있는 가치다. 지금껏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그 어두운 단면을 비교적 잘 덮었다. 나는 주로 이것을 계절과 관련지어 말하고 싶다. 지금껏 역사의 계절은 수확기에 접어든 가을이었다. 하지만 봄이 오기 위해서는 혹독한 겨울이 필요하다. 미국 국민들은 새싹을 돋을 봄을 간절히 원했다. 그 과정 속에서 '겨울'을 보내야만 하기에 '트럼프'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새로운 민주주의의 새싹을 피우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필요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경제에 관한 한국 사회의 욕망 대체제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거에 대한 향수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와 평가해 본다면 앞선 두 대통령은 모두 실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를 호황으로 만들지도 못했다. 그뿐 아니다. 4대 강 및 각종 이권 사업을 거하게 말아드셨다. 자기 주머니는 좀 채웠을지 모르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태와 부정부패로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첫 번째로 탄핵 선고를 받았다. 긍정적인 부분은 이 둘의 실패로 인해 대중들의 욕망은 모두 옳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향수와 방식이 더 이상 현 사회가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다 값비싼 교훈이다.
부시에서 오바마로, 그리고 다시 트럼프로 역행하는 미국의 정치 지형도 마찬가지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와 같이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의 정치의 후퇴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변화를 원했다. 힐러리의 당선은 그저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만약 민주당의 힐러리가 당선됐다면 월가의 기득권자들은 여전히 부를 누릴 것임이 자명했다. 거대 언론의 오만함은 유지될 것이다. 한국의 '강남 좌파'와 비슷한 의미로 통용되는 '리무진 리버럴'들의 모순 또한 계속 지속될 것다.
미국 국민들은 이런 주류 세력의 모순에 염증을 느꼈다. 썩은 종양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치료할 집도의로 도널드 트럼프라는 성형외과 원장을 선택했다. 힐러리라는 의사는 결국 애매모호한 자세로 그저 진통제만 줄 것이 눈에 훤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선택한 트럼프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큰 재앙이자 축복인 트럼프는 결국 '역사'란 거대한 흐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트럼프가 자신의 임기를 제대로 마칠지 어떨지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분명한 것은 하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 사회와 국제 사회는 큰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변화를 바랐던 미국 대중들의 바람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