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인구가 적었던 시절에 호칭을 구별하는 것에는 큰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다. 인구가 늘어나자 동명이인이 한 마을 안에도 많아졌다. 이것을 구별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다른 호칭을 덧붙어야 했다. 가령 윗마을 개똥이, 아랫마을 개똥이, 힘센 개똥이, 옆집 개똥이 이런 식이다. 이것이 바로 '성'씨의 기원이다.
각 국가나 문화권은 자신들만의 성(姓)씨를 짓거나 만드는 여러 과정을 거쳤다. 한자문화권의 경우 김, 이, 박, 장 같은 외자 성을 주로 사용했다. 일본과 같이 복성을 사용하는 문화도 있다. 비슷한 듯 다른 성씨에는 무엇보다 '공동체'와 '가문'을 중시하는 영향이 나타나 있다.
이런 가문 중시 문화는 성씨뿐 아니라 이름에도 영향을 주었다. 같은 성씨를 쓰는 집성촌은 지금도 흔적이 남아있다. 돌림자만 보면 항렬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가문'의 유대를 보다 강화했다.
성이 없는 개똥이, 말년이는 한 가문의 '노비'였다. 그래서 모두들 성을 가지길 원했다.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공명첩을 통해 족보 판매와 구매가 이뤄졌다. 이로써 양반과 노비, 모두 차별 없이 '성'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영어 문화권의 경우 한자문화권과 다른 특징을 보였다. 영어 인명의 구성을 보면 주로 성씨가 뒤에 위치한다. 이것을 라스트 네임(Last Name), 또는 패밀리 네임(Famil Name)이라 지칭한다. 영어권의 초기 성씨를 붙이는 방법은 매우 단순했다. John 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한 마을에 두, 세명이 있다면 그들 각각의 특징을 뽑아서 구별했다.
힘이 센 John은 John Armstrong이다. 존의 직업이 대장장이였다면, John Smith다. 그의 아버지가 Donald였다면 John Son of Donald, 줄여서 John Donaldson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씨가 영어 문화권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9세기경 노르만 정복 이후다. '죽음'과 '세금'(Death & Tax)은 살아있는 한 결코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노르만 공작이었던 윌리엄 대공은 영국을 정복한 후 세금 징수를 위해 '둠스데이 북(Doomsday Book)이란 토지대장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세금 징수를 위해 동명이인을 철저히 구별해야 했다. 그 후 성씨의 사용은 가속화된다. 영어의 성씨는 앞서 보았던 예시와 같이 주로 지명이나 별명, 가족관계, 직업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지명에서 유래한 성씨는 부시(Bush, 덤불), 모어(Moore, 습지), 노턴(Norton, 북쪽 마을), 클린턴(Clinton, 언덕 마을) 등이다.
다음으로는 별명이 성이 된 경우다. 빨간 머리를 가진 앤이라면 Red나 Russell을 성으로 삼았다. 갈색 머리는 Brown, 먹보는 Gulliver, 키다리는 Longfellow, 성실하고 정직한 이는 Truman, 게으름뱅이는 Dolittle, 매부리코는 Cameron이 대표적이다.
이런 방식보다 일반적이었던 것은 혈통에 따라 짓는 것이다. 주로 이런 방식을 차용한 경우 성에 주로 Mc, Mac, O', Fitz, Son, Sen, ov 등이 들어가 있다. 북유럽 쪽이 이런 방식으로 주로 성을 지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McDonald는 도널드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같은 방식으로 Donaldson 또한 마찬가지다.
맥아더 (MacArhur) 또한 조상 중 누군가는 아더였을 것다. O'Brien 또한 조상은 브라이언이었을 것이다. 피츠제럴드(Fitzgerald)의 조상은 제럴드며 잭슨은 잭에게서 Johnson은 John의 후계다.
또 다른 방식 중 하나는 직업에서 유래한 성씨들이다. 우리나라의 김 씨와 같이 영어권에서 가장 흔하기 접할 수 있는 성씨는 스미스(smith)이다. 스미스는 '대장장이'를 의미한다. 이는 과거부터 금속을 다루는 직업이 매우 많았고 중요했다는 뜻이다. 독일의 슈미트(Schmidt), 프랑스의 파브르(Fabre), 네덜란드의 고흐(Gought) 등은 모두 이 스미스와 유사한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외에도 성이 직업이었던 경우는 너무나 많다. 밀러, 테일러, 베이커, 쿠퍼, 하퍼, 카펜터, 부처, 아처, 마셜 카터, 채플린, 쿡, 가드너 등이 그렇다.
한자나 영어 문화권 외에도 러시아 문화권 또한 접미어로 -ov (-ova); -ev (-eva); -in (-ina); -sky (-skaya) 들이 붙는다. 남성과 여성을 철저히 구분하는 러시아어 특성상 성을 붙이는 방법도 조금 달랐다. 어쨌든 우리가 익히 아는 차이코프스키는 차이코프의 아들, 안톤 체호프는 체홉의 아들 정도 되겠다.
성에 대해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해본 것은 가끔 내 성(姓)에 대해 수없이 고민해보기 때문이다.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은 1997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170인의 선언으로 시작됐다. 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으로써 부모 성 함께 쓰기(양성 쓰기)를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이효재, 김조광수, 김고연주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양성 쓰기 운동에 대해 어머니의 성 또한 그 할아버지의 성이었다면서 이 운동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비웃기도 한다. 그리고 만약 자식을 낳으면 어떻게 이름을 지을 것이냐고 조롱도 한다.
사실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양성 쓰기 운동에 동참한 이들에게는 이를 비판하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심각한 고민보다 son이나 mc과 같이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명확히 하려는 의도가 짙다. 영어 문화권의 경우와 같이 미들 네임이 일반화돼 있다는 점에서 이름과 성이 길어진다는 것 또한 딱히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한민국이 이름을 두 자로 짓는 것이 전통이라고 해 꼭 그 전통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석 자, 넉 자, 다섯 자 등 이름은 딱히 정해진 것이 아니다. 개명도 일반화된 세상에 미들 네임이나 다른 것들이 길어진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가 아는 피카소의 전체 이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크리스피니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 (Pablo Diego José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ía de los Remedios Crispiniano de la Santísima Trinidad Ruiz y Picasso)다. 약칭 파블로 피카소라고 부른다. 피카소의 정식 이름은 놀라울 정도로 길다.
한국 사회도 이런 점에서 양성을 쓰건, 개명을 하건, 미들 네임을 쓰건 딱히 그것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각자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따라, 뿌리에 따라 이름을 정하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나'의 이름이지만 결코 나 스스로 부여한 이름과 성은 아니다. 그것을 바꾸는 것은 온전한 '나'의 자유다. 법이나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할 것이 아니란 소리다.
내가 정한 이름, 성으로 살겠다는 것뿐이다. 굳이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많이 이상한 노릇이다. 윌리엄 브래들리 피트나, 토마스 숀 코네리란 이름에는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으면서 김조광수란 이름에는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한편으론 편견이자 모순이다. 대한민국의 전통과 문화적 특수성이 있으니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시대착오 발상이다. 한편으로 폭력이다.
마지막으로 이 한자문화권의 성(姓)에 관한 마지막 의문은 언제부터 어떻게 부계성을 따르게 됐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한자 성(女+生)은 여자 여자와 날 생자의 조합이다. 의미를 추론해 보면 여성에게 낳는다는 뜻을 조합한 한자어다. 그런데 이 성(姓)의 고유 의미와 달리 부계성을 계승하는 것이 전통이 됐다.
전통이란 이와 같이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