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히 '곰스크'에 갈 수 없다

by 글레디에디터

'곰스크'는 한때 누군가의 꿈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곤 곰스크로 가라고 말했다. 곰스크는 그렇게 하나의 '꿈'이자 지표가 되었다.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곰스크로 가다 정차역에 멈춰버린 한 남자와 그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곰스크'는 실재하지 않는 도시다. 이상향 혹 꿈의 대명사로 사용된다. 남자는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곰스크'를 무작정 꿈꾼다.


아버지의 말에 따라 그저 '곰스크'로 가는 것이 그 남자의 꿈이었다. 그것은 아내의 꿈이 아니었다. 아내는 잠시 정차한 곳에 정착해 그곳에서의 삶을 꿈꾼다. 남자는 다시 곰스크로 떠날 채비를 한다.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곰스크는 다시 후순위로 밀린다.


부인이 '곰스크'로 떠나기를 원하지 않자, 그는 혼자라도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 남자는 내려온다. 부인 뱃속의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잠시 정착한 곳에서 일을 시작한다. 몇 해가 지난다. 그는 보금자리도 마련한다. 자신과 아내를 반반 닮은 아이들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낡은 서랍을 열어본다. 아직까지 거기에는 '곰스크'로 가는 티켓의 온기가 남아있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처음 만난 것은 <베스트극장>을 통해서다.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채정안과 엄태웅이 나왔다. 드라마는 연극적인 요소를 일부로 부각했다. 어딘가 오버스럽고 스산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보고 나면 어딘가 신산해지는 이야기였다.


내용이 너무 좋아 다음 날 도서관에 가서 당장 원작을 빌려봤다. 원작 쪽이 조금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는 <곰스크로 가는 기차> 외에도 몇몇 단편 작품들이 실려 있었다. 대부분 흥미롭게 읽었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나에게도 가고 싶은 '곰스크'가 있다고 믿었다. 내 주머니 안에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떠날 수 있는 티켓이 있다고 믿었다. 아직 때가 아니어서 '곰스크'로 떠나지 않는 것뿐이라고 되뇌었다. 그러나 그것은 '곰스크'와 마찬가지로 환상이었다. 티켓도 없었을 뿐 아니라 가야 할 곳조차 없었다. 가야 할 곳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현실적인 제반이 갖춰지지 않아 떠나지 못했다. 그때 떠났어야 했다. 어느새 내가 티켓만 바라보는 남자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점점 익숙한 곳에서 멀어지고 있어요. 이 여행은 끝이 없을지도 모르죠. 언젠가 들은 남의 얘기 말고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서 들은 말이 또 있나요? 그곳은 당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들은 그 곰스크와는 다른 도시일지도 모르잖아요.


선택에 순간에 인간이 망설이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잘 모르는 채 '꿈'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문득 깨닫게 된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했던 내 운명이라고?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꿈을 꿨던 모든 이들을 위한 실패담이다. 변명이다. 그리고 위로다. 남자가 행복한 지 아닌지, 아내가 진정 행복한 것인지 아닌지는 소설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둘은 여전히 정착한 곳에 남아 함께하고 있는 모습만 나온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것이다. 여전히 함께한다는 것 말이다. 단지 그곳이 '곰스크'가 아니라는 것, 남자의 서랍에는 여전히 티켓이 남아있다는 것.


한때 곰스크로 같이 떠나자고 누군가에게 강요를 했던 이가 있었다. 그는 정차역에 정착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함께했던 이는 여기서 그들의 '행복'을 시작하고자 말했다. 때가 되면 조금 더 '곰스크'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자고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갈 길을 찾아 갈라섰다. 남겨진 이가 어떤지는 모른다. 떠난 이는 '곰스크'에 도착하지 못했다. 중간에 이름 모를 역에 기차도 그도 멈춰 섰다.


돌아가야 할지 떠나야 할지 모른 채 하염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결국 돌아갈 수 없다고 판단한다. 다시 손에 남은 티켓을 들고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땅 '곰스크'로 가보려고 채비를 하고 있다. 그게 그의 운명이다. 기차가 다시 움직인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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