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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롤렉스 데이데이트 스틸의 전설 II

빈티지 튜더 데이트데이(2) : 롤렉스와 튜더


이 시계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이상했던 점은 다이얼에는 튜더 로고가 있는데 크라운과 케이스백은 롤렉스 로고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튜더 DD를 구하기 위해 시장을 뒤져봤을 때 매물이나 정보 자체를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점입니다. 주요 거래사이트 중 하나인 CH24 기준으로 롤렉스 DD 중고매물이 약 5천 개일 때 대중적으로 훨씬 많이 풀렸어야 마땅한 튜더 DD는 2백여 개 정도밖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브랜드 역사에서 찾아봤습니다.     


롤렉스는 1908년 영국 런던에서 설립되었다가 1919년에 스위스 제네바로 옮겼고, 튜더는 1926년에 만들어진 브랜드입니다. 롤렉스와 튜더의 설립연도 사이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라는 큰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유발한 큰 변화 중 하나는 귀족을 위한 소량생산에서 대중을 위한 대량생산으로의 전환입니다. 아마도 롤렉스를 설립한 한스 빌스도르프는 이러한 흐름을 목격하고 대중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때 그냥 롤렉스에서 만든 스틸케이스에 범용무브를 집어넣어 대중들이 접근 가능한 시계를 만들어 파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이 경우 저가의 시계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롤렉스의 이미지를 갉아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은 오늘날 입문용 모델에 범용무브 집어넣고 비싼 돈 받는다고 욕을 먹는 여러 고급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스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별도의 튜더라는 브랜드를 만들었고, 대신 롤렉스와 디자인, 마케팅, 생산시설, 부품 등을 공유하여 신생 브랜드의 신뢰도를 확보했습니다.     


당시의 광고들을 보면 롤렉스와의 연결고리가 얼마나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스 본인이 등장해서 튜더가 롤렉스 고유 기술인 오이스터와 퍼페추얼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합리적인 가격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인업도 롤렉스의 그림자라 할 만큼 오이스터, 서브마리너 등을 그대로 따랐고 케이스와 용두에는 롤렉스 마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때는 롤렉스와 튜더는 실질적으로 하나의 회사로써 롤렉스 디자이너가 튜더도 디자인하고 롤렉스를 조립하는 사람이 튜더도 조립했다고 합니다.     


1969년에 이르러서야 튜더만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방패모양의 로고와 눈꽃송이 모양의 핸즈를 가진 시계가 이때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소개하고 있는 데이데이트 라인도 이때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9년 크리스마스에 세이코 아스트론이 발표되면서 튜더뿐만 아니라 모든 기계식 시계브랜드가 생존을 위협받는 쿼츠파동(Quartz crisis)에 휩싸이게 됩니다.               

                      

1970년부터 시작된 기계식 시계의 몰락은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는데, 1970년에 2,200여 개였던 시계 제조사가 이 기간 동안 1,500개가 문을 닫고 업계 종사자 9만 명 중 2/3가 실직을 하는 등 스위스가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을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튜더라고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당시 생산량은 많지 않았고, 기계식 시계에 대한 수요가 점점 줄어들어 1996년에는 미국시장에서 철수했으며 2000년에 들어서는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아마 튜더 DD는 출시되자마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여 계속 시장이 침체되는 와중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생산량 자체가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고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그렇다고 이 시계가 희소성이 있어서 중고거래가격이 치솟거나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공급도 없지만 수요도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래는 튜더책을 샀을 때 받은 별책부록에 나와있는 모델별 중고거래 가격입니다. 시점은 2013년이고 금액단위는 유로인데... 꽤 지난 자료이기 때문에 지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겠지만, 튜더 서브마리너 같은 특별한 모델만 인기가 있고 나머지들은 고만고만하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마도 수요와 여론을 주도하는 미국과 같은 주요 시장에서 오랫동안 빠져있었기 때문에 컬렉터들한테 인기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고, 스포츠시계의 인기 때문에 서브마리너 같은 일부만 주목받는 것도 원인이지 않나 싶습니다.                                                                                         


스위스의 시계산업은 기계식 시계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회복되기 시작해서 2010년이 되면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기계식 시계산업에 봄이 오는 것이 확실해지자  튜더는 2009년에 브랜드 재론칭으로 돌아왔고, 2013년에 미국 시장으로 복귀하면서 본격적인 마케팅이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1969년에 찾은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롤렉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튜더만의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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