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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롤렉스 데이데이트 스틸의 전설 IV

빈티지 튜더 데이트데이(4) : 빈티지


앞서 세 번에 걸쳐 튜더 오이스터 프린스 데이트데이를 이해하기 위해 브랜드의 역사와 레퍼런스의 특징들에 대해 정리해 봤는데, 이번에는 빈티지 시계라는 관점에서 살펴볼까 합니다. 

                                                                                                

시계 제작연도의 추정     


시계의 제작연도를 추정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모델번호를 이용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시리얼넘버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모두 연도별로 정리된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만약 연도별로 정리된 자료가 없거나 자료의 신뢰도가 낮다면 출시연도가 확실한 시계들과 외관을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계의 경우 시리얼넘버는 1969년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모델번호가 정리된 카탈로그를 찾아보면 1977년에 출시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구체적인 설명과 사진까지 정리된 카탈로그에 신뢰가 가지만 사진자료를 비교해 보면서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다행히 1969년 출시된 모델들의 사진이 남아 있고, 이들은 제 시계와 인덱스 모양이 확연히 다릅니다. 따라서 1969년 모델은 아닙니다. 


그리고 롤렉스에서 제작되었으므로 롤렉스의 1960~70년대 모델들과 비교해 보면 1975년 밀가우스나 1977년 오이스터쿼츠와 인덱스의 형태나 야광 처리방법, 다이얼의 디테일, 케이스의 형태 등이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1977년이 맞다고 추정할 근거가 훨씬 많습니다.  

                                                                                  

튜더의 시리얼넘버에 관한 자료들을 보면 애초에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고 몇몇 컬렉터들에 의해 사후에 정리된 것으로 보이며, 의문이 제기되거나 예외적인 상황도 많아 시리얼넘버를 통한 제작연도 추정은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오래된 티     


아무튼, 이 시계는 벌써 45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과는 다른, 그 당시의 특징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시계가 디자인된 1950~60년대는 기계식 시계산업의 르네상스로써 시계장인들이 요즘처럼 원가절감에 신경 쓰지 않았으며 해보고 싶은 도전들을 마음대로 시도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계식 시계의 기술 대부분이 완성되었는데, 최근 레트로의 원형이 되는 전설적인 디자인들도 많이 탄생했다고 하네요. 


아래 롤렉스의 역사만 보더라도 데이데이트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모델들이 1950-6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출시된 튜더 DD에도 새로운 시도가 엿보이는데, 34~36이 일반적이던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사이즈인 38mm가 시도되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Jumbo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앞서 레퍼런스에서도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1977년도 모델까지만 이 크기로 제작되다 80년대부터는 롤렉스 DD와 똑같은 36mm로 작아졌습니다.     


이 당시 시계들의 대부분이 베젤 위로 볼록 튀어나온 플라스틱 소재의 글라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시계의 경우에는 비행기의 유리창으로 사용하는 플렉시글라스를 적용했다고 합니다. 야광으로는 트리튬이 적용되었습니다. 무브는 60년대 말 제작된 SA-1895, 원산지 표기도 요즘과 다르게 SWISS라고만 되어있습니다.

      

요즘 봐도 어색하지 않은 외관에도 불구하고 이 시계가 오래된 시계라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무브먼트 때문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이 시계의 무브먼트를 A.S칼리버 1895라고 소개하고 있고, 로터에는 Tudor, 21-Rubies Auto prince Swiss made, 안쪽에는 1895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대부분의 자료에서는 ETA-1895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실은 A. Schild라는 회사에서 생산한 AS-1895라는 무브먼트를 튜더에서 수정해서 장착한 것입니다.                                                                                              


A.Schild는 189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무브먼트를 생산하던 회사로써 1920년대에 직원만 2천여 명을 고용했던 스위스의 가장 큰 무브먼트 회사였으나 쿼츠파동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1979년에 ETA에 합병되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A.Schild는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많은 빈티지 시계에서 발견되는 무브먼트라고 하네요.     


요즘 볼 수 없는 무브이다 보니 조작방법이 좀 특이해서 처음에는 고장 난 줄 알았습니다. 


이 시계는 데이데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용두에 태엽을 감는 것과 시간을 조정하는 두 가지 포지션 밖에 없거든요.     


확인 결과 시간을 조정하여 24시를 넘겼을 때 날짜를 맞추고, 이후 시침을 8시까지 뒤로 돌렸다가 다시 앞으로 돌려 요일을 조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노모스가 날짜를 조정하는 방식과 비슷한데 요즘 시계 중 데이데이트를 이렇게 조작하는 시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시계를 오버홀 해주신 선생님도 경력이 꽤 오래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도 스위스에서 공부할 때 책에서만 봤지 A.Schild를 실물로 본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뜯어보시고는 구조가 좀 특이하고 오래되었음에도 굉장히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하셨습니다. 오버홀 결과 이전에는 일오차가 –40초였는데, 이후에는 +2초가 되었습니다.          



야광으로 Tritium을 쓰고 있다는 점도 이 시대 시계들의 특징입니다. 잠시 시계 야광의 역사를 살펴보면 1960년대 이전에는 라듐이 쓰였고, 이후 90년대까진 트리튬이 쓰이다가 90년부터는 스트론튬(루미노바)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퀴리부인이 발견한 라듐은 스스로 빛을 내고 몇십 년이 지나도 야광성능이 유지되는 장점이 있지만 방사능이 높고 인체에 축적되어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1960년대부터는 국제적인 규제가 시작되었고, 롤렉스는 1964년에 야광물질을 트리튬으로 전면 교체하고 다이얼 아래에는 T SWISS T 라고 적어 트리튬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이 시계에도 트리튬이 적용되었는데, 트리튬은 빛을 받아야 작동하는 축광식 야광과 달리 스스로 빛이 나기 때문에 K2소총 같은 군사용 장비에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흰색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시계처럼 노랗게 익어서 빈티지시계의 상징 같은 색깔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트리튬 역시 핵융합의 원료로도 사용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이기 때문에 안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방사성 입자를 방출하기는 하지만 너무 약해서 공기를 6mm 정도 뚫는 수준이고 피부는 전혀 못 뚫는다고 하네요. 먹거나 마시게 되더라도 몸에 축적되지 않고 몸에서 금방 빠져나가니 다른 방사성 물질에 비해 인체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물질을 야광으로 사용한 시계를 차더라도 사용자에겐 영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노출되는 문제 때문에 90년대부터는 대부분 루미노바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빛을 쬐지 않아도 24시간 빛나는 성질 때문에 아직 일부 군사용 시계에서는 트리튬을 쓰고 있습니다.     


트리튬의 반감기는 12.3년으로 50년이 된 이 시계의 야광은 거의 죽었습니다. 계산해 보면 원래 밝기의 12.5% 수준으로 줄어들었겠네요. 


그래도 어두운 데서 보면 아직 까지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는 합니다.     



3. 빈티지 시계의 구매에 대해서     


이렇게 오래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빈티지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제가 꽂힌 시계가 공교롭게도 오래되었을 뿐입니다.


주변에 이런데 경험이나 노하우가 있는 사람도 없다 보니 혼자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빈티지 워치라는 용어도 처음일 때,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던 기사들 링크를 걸어봅니다.      


[江南人流] 나도 '빈티지 시계' 하나 사 볼까 (https://news.joins.com/article/22793797

[인터뷰룸] 내가 빈티지 시계를 사랑하는 이유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701868&memberNo=11292208 

이베이에서 빈티지 워치 구매하기 

https://www.hodinkee.com/articles/hodinkee-guide-to-buying-watches-on-ebay     

이 외에도 유튜브 등에 올라와있는 빈티지워치 구매가이드 자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http://www.econovill.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470          

이들 내용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 빈티지워치란 일반적으로 한 세대(30년) 이상 된 시계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다 빈티지 워치로 분류되는 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는 고품질의 기술과 디자인, 스토리를 가졌는지가 중요합니다.     


b. 오리지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공부가 중요합니다. 빈티지 시계의 수집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출시 당시 상태 그대로이고, 피해야 할 것은 파손, 부식, 다이얼이나 중요 부품의 교체 등 원본에서 벗어나는 변형입니다. 오리지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잘 정리된 책을 구하거나, 전문가들이 검증하여 올린 거래물건에 대한 자료 등을 원하는 물건과 비교 분석하는 방법, 직접적으로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방법 등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결국 본인이 몇 개의 사진이나 설명을 바탕으로 구매결정을 하는 것이므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안목을 길러야 하며 이는 상당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c. 판매자에 대한 신뢰도가 중요합니다. 판매자가 제공하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그 시계에 대해 중요한 것을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우므로 결국 어떤 형식으로든 물건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판매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거래하는 사이트에서는 이들에 대한 평판도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를 참고해야 하고, 가능하면 오프라인 매장이 있고 자체 전문인력을 보유한 셀러와 거래를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d. 구매 후 서비스를 고려해야 합니다. 위대한 컬렉터 뒤에는 위대한 워치메이커가 있다는 말처럼 구매 후 전문가를 통한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오버홀을 받거나 유리 등 소모품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합니다.      


e.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오리지널이 중요하다고 아무것도 교체하지 않고 제 성능을 발휘하며 사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클래식카를 구매했는데 타이어까지 몇 십 년 전 것을 그대로 쓸 수는 없는 것처럼, 스크레치에 취약한 운모유리를 교체하거나 성능확보를 위해 메인스프링을 교체하는 경우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다이얼을 새 걸로 교체하거나 폴리싱을 과도하게 하여 오래된 흔적을 없애는 등의 외형변화는 빈티지 워치의 가치를 없애버리는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수성능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f. 무엇보다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물건을 찾아서 구매해야 합니다. 빈티지 워치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새 시계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물건이 생산이 중단되었고 정보가 부족하여 좀 더 수고스러운 절차를 거치는 소비 활동뿐이지 보물을 찾아내는 투자 활동이 아닙니다. 물론 6달러에 산 중고시계를 35,000달러에 판 이야기도 있지만, 요즘처럼 조금만 검색하면 그 시계에 대한 가치과 가격이 나오는 시대에서 정보비대칭으로 돈을 벌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보다 적습니다. 투자의 관점에서 빈티지 시계는 대체재가 너무도 많고 이 시계에 꽂힌 바보가 날 찾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유동성 리스크가 너무나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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