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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롤렉스 데이데이트 스틸의 전설 V

빈티지 튜더 데이트데이(5) : 무보정 무브먼트 & 14K

1977년식 Tudor Oyster Prince Date+day입니다.


지난번까지 4차례에 걸쳐 튜더 DD에 대해 조사했던 자료들을 정리하고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들이 있길래 추가로 정리해 볼까 합니다.




1. 무보정(Unadjested) 무브

 

앞서 설명했다시피 두 시계 모두 A.Schild 1895 무브먼트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은테시계를 처음 워치메이커한테 데려가서 기계에 올려놓았을 때만 해도 일오 차가 –46초로 나왔는데, 오버홀 후에는 +2.7초로 조정됐습니다. 잠깐이지만 조정과정에서 일오 차가 0이 나타나기도 했다는데, 45년이라는 세월을 감안하면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무브먼트라고 생각됩니다.




금테시계는 오버홀주기를 5년으로 볼 때 아직 1~2년이 남아있는 상태라 좀 더 사용하고 시간이 느려지는 게 느껴지면 가져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점검을 받는 과정에서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다가 두 시계의 로터에 새겨진 문구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태리어로 요일이 표시되는 은테시계의 로터에는 Tudor, 21-Rubies Auto prince Swiss made라고 쓰여있고, 로터 안쪽에는 Tudor Geneve 1895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이 표기는 홈페이지나 튜더 관련 책에서 확인되는 자료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요일이 영어로 표시되는 금테시계의 로터에는 전혀 다른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Montres TUDOR sa geneva, Seventeen 17 Jewels Swiss Unadjusted




순간, 눈을 의심했습니다. 시계가 하나였다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비교대상이 있다 보니 큰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누군가가 시계의 껍데기만 남겨놓고 속은 싸구려 무브먼트로 바꿔 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보석수는 은테시계보다 4개나 적고 ”무보정(Unadjusted)“이는 멍텅구리 표시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계의 일오차는 –4초 수준으로 43년이란 세월과 아직 오버홀을 안 했다는 상태를 고려하면 퍼포먼스가 양호했습니다. 그리고 로터에 새겨진 문구를 제외한 무브먼트의 모양은 똑같아서 그냥 멍텅구리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고요.


그리고, 비즈니스 상식으로 봤을 때 ' 무보정' 표시를 할 이유도 없어 보였습니다. 당시 워치메이커가 보정을 하는 데는 5시간이 소요되었고, 보정된 무브는 무보정보다 가격이 10배 이상 높았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무보정 무브를 가져다 5시간 동안 보정을 해서 adjusted라고 새기기만 해도 10배를 버는데... 애초에 대중시장에서의 수익확대를 목적으로 만든 튜더라는 브랜드에서 이렇게 각인까지 해가며 수익창출의 기회를 포기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죠.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되어 자료를 뒤지다가 미국 의회의 1955년도 청문보고서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2D3PgjJGDfUC&printsec=frontcover#v=onepage&q&f=false  

무려 230여 페이지나 되는 이 보고서는 미국의 국세청이 관세 관리를 잘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미국은 1930년대부터 자국의 시계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디테일한 기준을 만들어 관세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게 청문회를 하는 당시까지 잘 운용되지 않아 막대한 탈세 정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시계수입에 적용되던 관세 기준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1. 시계 사이즈가 줄어들수록 가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관세가 올라갑니다.

2. 보석수(특히 17개 초과)가 증가할수록 관세가 높아집니다.

3. 보정(adjust)의 가짓수가 늘어날수록 관세도 늘어납니다. 자세차 1가지가 조정될 때마다 관세도 추가되는데, 온도보정까지 행해지면 관세는 두 배가 됩니다.


규정에 의하면 위 2, 3 사항에 대해서는 무브먼트에 표기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싸고 좋은 시계를 원하고, 공급자들은 관세를 내지 않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언더벨류“가 횡행했습니다. 즉, 공급자는 로터에 실제 성능보다 낮게 표기해서 관세를 피했고, 소비자들은 5가지 자세차+온도보정이 된 우수한 시계를 싸게 살 수 있었던 것이죠.


실제 무조정, 3 조정, 5 조정 무브를 비교 실험한 결과 성능의 차이가 없어서 동일한 무브먼트로 확인되었고, 스위스에서 제작된 똑같은 무브가 캐나다 등 여러 나라로 수출되었는데 미국에 들어갈 때만 유독 '무보정'표시가 된다는 증언과 자료가 의회에 제출됩니다. 그리고 판매자들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판촉물을 통해 이 시계가 모든 오차보정이 완료된 시계라고 홍보하고 있었고요. 


너무 양이 많아서 대충 답만 확인하고 덮었는데, 결국 17개 보석과 무보정으로 표시된 이유는 미국의 관세 때문이고, 이 시계는 미국시장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혁신적이라던 이 시계의 38mm 크기도 뭔가 심미적이거나 기능적 이유가 아니라 관세기준 1번에 맞춘 디자인이 아니었겠느냐는 생각도 드네요. 


만약 그렇다면 소름 끼치는 일이죠. 존슨대통령 시절 높아진 롤렉스 DD의 인기를 활용하여 대중시장에서의 전과확대를 목적으로 기획된 것도 굉장히 시장지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뼛속까지 전략적인 시계였다니...



2. 14K yellow gold


이 시계가 미국 수출용으로 기획된 시계라면 플루티드 베젤이 14k인지 18k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됩니다.



이 시계의 베젤에 대해서는 옐로골드라고만 알려졌고 공식적인 자료는 없어서 판매글에 따라 14k, 18k가 혼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와이프가 가지고 있는 반지 중 14k와 18k를 옆에 놓고 비교도 해봤는데, 누런 끼가 덜하고 각도에 따라 샴페인에 가까운 색깔로도 보여서 막연하게 14k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금 색깔도 다양하게 나와서 육안으로 둘을 구분하기는 힘들하고 하네요.



그런데 미국용 시계라면 14k가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당시 미국시장에서는 18k보다 14k가 선호되었다고 합니다. 관련 설명을 찾아보니 동양이나 유럽에서는 금을 자산가치를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금함유량이 높은 18k가 선호되지만, 미국에서는 금을 일상생활에 착용하는 웨어러블로 접근하는 경향이 높아 내구성이 확보된 14k를 많이 쓴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또 다른 해석도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환율변동이 심해 안정자산을 확보해둬야 하는 문화가 있지만,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인들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본위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금과 똑같은 달러의 지출을 줄이는 것이 곧 자산관리였고, 사교적인 모임에 갔을 때 최소한의 비용으로 과시효과를 얻기 위한 적정선이 14k여서 14k가 일반적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다 보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다 보면 사랑하게 된다는데, 빈티지 시계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아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고, 그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이 시계가 나온 이유를 이해하게 되다 보면 점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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