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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롤렉스 데이데이트 스틸의 전설 VII

빈티지 튜더 데이트데이(7) : 모드 vs 프랑켄

빈티지 시계 시장에는 진정성과 가치를 둘러싼 수많은 함정들이 있습니다


이 시장에서 시계를 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깨끗하고 공장에서 출시된 상태 그대로의 시계를 원합니다


하지만 막상 시계를 구매하려고 나서면 무엇이 오리지널인지 알기 힘든 때가 많고세월을 거치면서 조금씩 손을 댄 경우가 많아 어디까지가 오리지널인지 판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시장에는 이러한 틈을 파고드는 시계들이 있습니다아래는 브로바 슈퍼세빌의 다이얼과 크라운을 각각 튜더와 롤렉스로 교체하여 90년대 스타일의 튜더 DD를 만든 사례입니다


두 시계 모두 36mm에 무브먼트도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재미로든 돈을 목적으로든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시계가 시장에 나온다 하더라도 튜더 DD에는 케이스까지 골드인 모델이 없다는 정보만 있다면 여기에 속아서 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빈티지 시계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함정이 잘 작동합니다.


그래서 저는 빈티지 튜더 DD를 구할 때 일단 스위스의 watchprint라는 시계서적 전문사이트에서 Tudor Anthology라는 책을 구했습니다


이 책은 연도별로 출시된 대표적인 레퍼런스의 사진들과 특징들을 사전식으로 담고 있어서 물건의 오리지널 상태를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책이 담지 못하는 여러 가지 파생모델들에 대해서는 여러 사진이나 동영상들을 찾아봤고요.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매물로 올라온 시계들을 살펴보니 상당히 많은 시계들에서 원본에 손을 댄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위 사진들에서 10시 방향의 사진은 일단 핸즈의 길이가 너무 짧고 튜더라는 글씨도 튜더 DD가 출시된 69년 이전에 사용한 폰트입니다모델명도 없네요아래 SWISS양쪽으로 붙어있는 T도 원본에는 없는 요소입니다.

 

2시 방향의 경우는 다이얼이 교체된 데다 야광도 새로 칠해진 것 같습니다다이얼 재질도 낯설지만 셀프와인딩이라는 글자가 휘어진 것은 66년까지만 쓰던 스타일이었으며, swiss made 등이 원래의 이 시계와 맞지가 않습니다.


8시 방향의 시계는 다이얼을 살구빛으로 꽤 정교하게 커스텀한 것 같습니다다이얼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69년형이 맞는데 다이얼 색깔이 생소하고 이 라인에서는 97년부터 등장하는 swiss made 표기가 눈에 띕니다. 


4시 방향 시계는 핸즈가 이상한 걸로 교체되었네요오리지널은 분침이 눈금선까지 뻗어 전반적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인데 이 시계는 길이가 한참 못 미치고, 핸즈 모양도 틀린 데다 야광도 트리튬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걸러나가다 보면 빈티지라고 매물로 올라온 것 중에 생각보다 오리지널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시계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간에 40~50년이라는 시간이 있고 시계라는 게 고이 모셔두는 게 아니라 주인과 함께 일상을 함께 하는 물건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노화되고 파손되어 이래 저래 손을 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그러니까 빈티지 시장에서는 오리지널 디자인이 가치가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원본에서 벗어난 모든 변형이 다 나쁘다고도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통상 시계에 손을 대서 원본에 변형을 가져오는 행위들을 커스텀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찾아보니 그 의도와 목적 그리고 결과물의 수준에 따라 크게 Mod와 Franken으로 나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Mod는 Modification의 약자로 보통 나만의 스타일을 구현할 목적으로 시계를 개조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통상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바꾸고 싶다는 동기에서 시작하는데작게는 스트랩을 교체하는 것에서부터 전체적인 색상이나 다이얼의 디자인을 바꾸는 것 까지도 포함합니다


여기에는 영국 뱀포드(Bamford Watch Department, BWD), 프로헌터독일 블레이큰(Blaken)같은 전문 회사들도 있어서 자신들이 새 시계를 매입하거나 브랜드와 협력하여 공급받은 뒤 자기들 스타일로 개조하여 원본의 2배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답니다.

 

Franken이라는 단어는 죽은 자들의 뼈와 살을 조합해서 만든 괴물인 프랑켄슈타인에서 따왔다고 합니다말 그대로 죽은 시계들에서 멀쩡한 부품들을 발라내 모은 뒤아니면 출처가 불분명한 부품들을 구해서 하나의 시계를 만들어내는 것인데통상 가치가 없는 시계를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작업들을 말합니다


시계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시계를 고치는 과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다이얼이나 핸즈를 원래 부품이 아닌 싼 걸로 교체하는 것에서부터 가격이 낮은 시계에 비싼 시계의 다이얼을 붙여 가격을 높이거나마모되고 파손된 빈티지 시계에 원본과 다른 부품을 넣어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민 뒤 원본과 같은 가격으로 파는 행위들이 이런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좀 편협하고 극단적인 비유일 순 있겠지만, 차로 비유하자면 Mod는 벤츠의 AMG, BMW의 M, 볼보의 폴스타 같이 순정 자동차를 고성능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고, Franken은 사고 난 차를 사설 정비소에서 다른 사고차 부품으로 고치거나 두 대를 멀쩡한 부분만 떼어다 하나로 붙여서 무사고 차라고 속여 중고차 시장에 내다 파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봤을 땐, 손댄 이후 원본보다 좋아졌냐 아니냐를 판단기준으로 한다면, Modded watch보단 Franken watch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특히 빈티지 시계에서 기능유지를 위해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행위는 대부분 프랭켄워치로 결말을 맺게 되는 것 같습니다튜닝의 끝이 순정이란 말처럼 이미 짜인 구성과 관계에 손을 대서 결과적으로도 균형을 맞추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오리지널인지 fake인지, 좀 더 들어가서는 mod인지 franken인지를 구별하려는 이유는 어렵게 모은 돈을 들고 빈티지 시장에 어설프게 들어갔다가 시계를 건네는 사람의 장난이나 탐욕에 희생되고 싶지 않아서일 겁니다.

 

근데 얼마 전에 만난 튜더 DD 턴오그래프 타입은 이런 판단이 잘 안 되는 시계였습니다. 나름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한 뒤 시험 치러 들어갔더니 생전 처음 보는 문제에 당황한 수험생의 기분이었습니다. 


이 시계는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생산된 ref.7020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감 스타일이나 상태를 보니 오리지널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원본의 형태를 벗어난 부품이 눈에 띈다거나 프린팅이 정해진 규칙을 벗어난 것도 없었습니다. 흑백사진으로 비교한다면 원본과  차이가 없는데, 광택과 색깔을 알 수 있는 컬러사진으로 봤을 땐 이 시계는 요즘시계 같은 느낌이란 게 차이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계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좀 많이 했었습니다. 책에서 담지 못한 레퍼런스인가, 저 책의 정보가 맞기는 한 건가? 혹시 나중에 누군가 커스텀한 건지, 아니면 그야말로 누군가가 새롭게 창조한 프랑켄워치는 아닐까, 도대체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하고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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