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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롤렉스 데이데이트 스틸의 전설 VIII

빈티지 튜더 데이트데이(8) : 리스토어


영화 존윅에 나오는 Mustang Boss 429입니다이 차는 1969년에서 1970년까지 1,359대만 생산되었는데그중에서도 8백여 대에 불과한 69년도 모델은 지금까지 생산된 머슬카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인기 있는 차로 꼽힙니다.



당시 포드는 NASCAR에서 승승장구하던 크라이슬러를 꺾기 위해 V8 7,500CC의 429 엔진을 만들었습니다그런데 이 엔진을 경주에 출전시키려면 최소 500대 이상의 일반인 판매실적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그래서 포드는 이 거대한 엔진을 수용하기 위해 후드를 길게 늘인 새로운 머스탱을 제작했는데그게 바로 이 Boss 429입니다.






벌써 50년이 넘은 디자인이지만 지금 봐도 여전히 멋있습니다때문에 그 매력에 빠진 컬렉터들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오래된 차를 찾아내어 복원(restore)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습니다.


리스토어(restore)는 여러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이지만 자동차 분야에서는 오래된 차를 갓 출시된 새 차처럼 복원하는 일을 말합니다단순히 외관을 반짝이게 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동계와 각종 핵심 부속품을 신품이나 호환품 등으로 교체하여 차량 전체를 최상의 상태로 복원해야만 리스토어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합니다어떤 곳이든 원본보다 강화해서 개인의 취향과 목적에 맞게 튜닝한 것을 커스텀카순정에 가깝거나 비슷하게 복원하는 것을 앤티크카로 구분하는데 전자는 미국에서후자는 유럽에서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합니다




이 시계(Tudor Oyster Prince Date+Day(이하 튜더DD) ref.7020/0,)는 자동차 분야에서 쓰이는 '리스토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왜냐하면오래된 시계를 새것처럼 복원하고구동계에 해당하는 무브를 요즘 것으로 교체했으며그 과정에서 컬렉터의 취향에 맞게 커스텀 되었기 때문에 Mod나 Franken과는 결이 좀 다르기 때문입니다.




튜더 DD의 와이드 인덱스 다이얼은 1969년 출시되어 1970년대 초반까지 생산되었는데제작연도를 확인해 보니 1971년으로 추정됩니다일반적인 튜더가 시리얼 넘버를 6자리를 쓰는 데 반해 이 시계는 7자리를 쓰고 있고, 이는 롤렉스 시리얼 넘버 중 1971년 것입니다. 물론 다른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케이스에는 롤렉스 로고가 새겨져 있고요. 당시 밀가우스 ref.1019와 38mm 케이스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70년대 초반에는 이렇게 재고를 돌려쓰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계는 2007년에 미국에 있는 어떤 컬렉터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커스텀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무브먼트는 A.Schild-1895에서 ETA 2836-2로 교체되었고, 외관은 롤렉스 턴오그래프 ref.116264를 모티브로 해서 새로운 스타일로 바뀌었습니다.

 

무브 교체로 날짜와 요일이 각각의 창문에 꽉 차도록 커졌고핵기능과 퀵셋이 가능해지면서 시분침을 수십 번 돌려 날짜를 바꿔야 하는 A.Schild에 비해 훨씬 편리해졌습니다.




다이얼은 평소엔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햇빛에 나가면 다크초콜릿 색으로 보입니다프린팅이나 폰트인덱스 등이 원본과 같습니다. 근데 상태가 너무 양호해서 이게 관리가 잘 된 오리지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재생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덱스는 주름--평평한 부분 이렇게 3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평평한 부분을 베젤과 같은 유광으로 마감해서 주변의 빛과 풍경을 반사하게 만들었습니다거기에 붉은색 초침이 더해지면서 시계 분위기는 이전보다 훨씬 세련되고 스포티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오리지널들은 상태가 좋다고 하더라도 빈티지스러운 느낌을 피할 수 없는데, 이렇게 커스텀하니까 마치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계 같아 보입니다.


둘 사이에는 3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턴오그래프타입의 튜더 DD와 롤렉스 턴오그래프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리스토어링 하기로 결정한 전 컬렉터의 안목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시계를 받았을 때 전반적인 디자인이나 스타일은 마음에 들었지만핸즈에 칠해진 연둣빛 야광과 붉은색 초침의 마감상태가 눈에 거슬렸습니다경험상  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생기면 계속 신경 쓰다가 결국에 안 차는 경우가 많아서자주 가는 삼성동 워크숍에 오버홀을 맡기면서 야광은 흰색으로 바꾸고 초침은 다시 칠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원하는 대로 바꾸고 나니 마음이 편하네요.







지난 몇 달간 이 오래된 시계들을 모으면서 남들 다 좋다는 시계를 백화점에 가서 대접받으면서 사면되지 왜 이런 오래된 물건에 빠져서 이러고 있는 걸까?’를 고민해 봤습니다.




1966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포드 V페라리’를 보면 차에 미친 Car Guys와 숫자-행정-마케팅 편집증 환자에 해당하는 Bean Counters가 나옵니다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Bean Counters 뜻대로 경기가 마무리되고 Car Guys는 사고로 죽습니다결국 영화가 상징하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숫자와 마케팅 편집증 환자들이 만든 물건을 사용하는 시대가 된 것이죠.




때문에 숫자나 행정마케팅을 신경 안 쓰고 만들어진 물건들을 보면 묘한 매력을 느낍니다아마 이런 것들에는 평소에 느끼기 힘든 맹목적인 열정이 배어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 봤을 땐 1960년대 말이 그런 게 가득했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경기에서 이기겠다고 트럭 엔진을 승용차에 구겨 넣은 사람들자기들 브랜드의 플래그십 디자인에 새로운 실험을 하는 사람들그걸 40-50년 만에 새롭게 되살리겠다는 사람들... 1969년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스마트폰보다 못한 계산기로 인류를 달에 보냈습니다그러다 1970년대부터는 쿼츠파동이나 이후 찾아온 오일쇼크로 세상이 바뀌면서 오토매틱시계와 머슬카가 궤멸하고 모든 걸 철저히 계산하고 따져봐야 하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 흔적들에 끌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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