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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까레라, 역사는 돈이 된다 III

까레라 리에디션(3) : 까레라의 죽음과 부활



2. 까레라의 죽음과 부활


호이어는 까레라의 성공을 시작으로 이후 10여 년간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1969년 해밀턴, 브라이팅과 합작으로 세계 최초의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를 개발함으로써 더 큰 도약의 기반을 마련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해 크리스마스에 발표된 세이코 아스트론을 시작으로 스위스의 시계산업을 위기에 빠트린 쿼츠파동이 몰아닥쳤고, 호이어도 이를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호이어는 미국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1971년 금본위제가 폐지되고 스위스프랑이 강세로 돌아서는 바람에 미국에서의 가격경쟁력까지 상실했습니다. 이렇게 호이어는 70년대 내내 수익성이 악화되더니 중국에서의 스톱워치 대량 주문 취소가 결정적 계기가 되어 82년에는 부도를 맞게 됩니다.




까레라의 아버지이자 호이어의 CEO인 잭 호이어는 나이 50에 채권자들에게 회사지분을 모두 빼앗기고 쫓겨났으며 회사는 피아제로 팔려나갔습니다. 그러다 85년에는 항공 및 모터스포츠 사업을 하는 TAG(Techniques d’ Avant Garde) 그룹에 인수되어 지금의 TAGHeuer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TAG는 포뮬러 터보엔진제작 및 맥라렌 F1팀도 운영하는 회사였고, 호이어는 F1의 공식 타임키퍼였으므로 둘의 조합은 꽤 어울려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TAG는 시장성과 투자수익률에 민감한 비즈니스맨들이었지 장인정신을 가진 워치메이커가 아니었습니다.




TAG는 인수 초기 태그호이어의 컨설팅을 수행했던 부즈알렌해밀턴의 크리스티앙 비로스(Christian Viros) 팀 3명을 모두 영입하여 이 회사의 경영을 맡깁니다. 이들은 팀을 이끌던 크리스티앙이 40세였고 팀원은 20-30대로 상당히 젊었으며, 컬럼비아 MBA, 와튼스쿨 출신에 시계산업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침몰해 가는 시계사업을 되살리는 데에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곧바로 구조조정에 착수합니다.




이들은 먼저 라인업을 뜯어고쳤습니다. 까레라를 비롯해서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기계식 크로노그래프의 생산을 중단하고 저가 쿼츠라인 개발 및 생산에 집중했습니다. 당시 만들어진 다이버를 닮은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쿼츠시계는 스포츠 버전의 스와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태그호이어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인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매출의 막대한 비중을 마케팅에 쏟아붓는 DNA가 심어진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크리스티앙이 경영을 맡은 88년부터 95년까지 실적을 비교해 보면 판매수량은 2배, 시계의 가격은 3배 정도 증가하여 매출은 6배 정도 증가했습니다.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55에서 35세로 젊어졌습니다. 까레라를 땅에 묻고 시계장인들도 내보냈지만 확실히 그들의 구조조정은 성공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TAG 비즈니스맨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태그호이어를 상장시켜 비싸게 매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오랜 침체기를 거쳐온 고급 기계식 시계 시장이 다시 살아날 조짐이 보였었고, 대형 럭셔리그룹들이 만들어지면서 브랜드들을 사 모으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태그호이어는 실질적으로 이제 막 10년이 된 브랜드였고, 직접 생산하는 무브먼트도 없이 저가시계를 조립해서 판매하는 마케팅회사로 인식되었습니다. 럭셔리브랜드들이 태그호이어를 사기에는 로맨틱한 스토리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1996년, 크리스티앙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호이어의 전설을 부활시켜 태그호이어에 덧씌우는 전략을 추진합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묻었던, 호이어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계인 Carrera를 다시 파내어 1964년(실제로는 1963년) 디자인에 호이어 로고까지 그대로 박아 재발행하고, 크로노그래프와 모터스포츠에서 쌓아온 실적들을 '시간을 정복하기 위한 도전과 여정'으로 드라마틱하게 정리하여 Mastering Time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발표하는 행사에 잭호이어를 초청하고 그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써 호이어의 전설적인 역사는 태그호이어와 통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태그호이어는 뉴욕과 스위스 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9년, 세계 최대의 명품제국 LVMH가 태그호이어 주식 전량을 7억 7,500만 달러(현재 환율로 9,300억 원)에 인수합니다. 이 중 TAG의 주식은 5억 달러였는데, TAG가 호이어를 1억 달러에 매입했다고 하니까 약 10년 동안 500%의 수익을 올린 셈입니다.


이러한 거래가 성사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태그호이어의 브랜드 이야기가 명품브랜드 사냥꾼으로 알려진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회장을 매료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M&A로 70여 개의 브랜드를 모아서 LVMH를 만들었는데, 매입대상을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브랜드의 역사와 전통이었다고 합니다. 크리스티앙이 까레라를 부활시키고 역사책을 쓴 건 다 계획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LVMH 인수 후 잭호이어는 2001년에 태그호이어의 명예회장으로 복귀함으로써 브랜드의 정통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티앙 비로스는 태그호이어와 함께 LVMH로 넘어가 시계 및 주얼리 사업부 사장을 맡으면서 제니스 등을 인수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1964년 까레라를 만든 건 Jack Heuer이지만 1996년 까레라를 만든 건 Christian Viros입니다. 1964년 까레라가 워치메이커, 크래프트맨쉽, 모던디자인, 모터스포츠의 상징이었다면, 1996년 까레라는 컨설턴트, 경영전략, 마케팅, 그리고 성공한 M&A의 결과물로 읽힙니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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