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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까레라, 역사는 돈이 된다 V

까레라 리에디션(5) : 모던 크로노그래프



1964 Heuer Carrera Re-edition cs3111입니다.
이전 까지는 배경과 역사를 살펴봤는데, 오늘은 이 시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크기가 작고 무게가 가벼워 착용감이 좋다는 것입니다. 크로노그래프는 특별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크고 무겁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 시계는 근래에 보기 드문 35.5mm 스틸 케이스라 56g에 불과하고 수동 무브먼트가 장착되어 두께는 13mm입니다. 참고로 러그사이즈는 18mm, 방수 100m, 플랙시글라스를 쓰고 있습니다. 방수는 오버홀 하면서 측정한 값인데 30m로 나와있는 자료들도 많습니다.
 

 


케이스는 측면 라인이 원형 케이스를 감아 돌고 러그에서는 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어 정면에서 보면 긴 6 각형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러그는 안쪽을 접어서 밖에서 보면 막대기 같이 보이고요. 덕분에 실제보단 길어 보이지만 같은 사이즈의 다른 시계와 나란히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형태를 단순화하되 그 속에서 비례나 규칙, 수학적 질서 등을 적용해 균형미를 추구했는데, 이들을 동경하던 잭호이어도 이 시계에 너무 엄격한 질서를 부여하는 바람에 시계제작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어떤 질서가 있는지 찾아봤더니, 기본적으로 3.5mm를 기본단위로 해서 1:2의 비율을 가진 3.5 mm×7.0mm 모듈로 디자인이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다이얼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크기나 위치가 이 모듈의 배수 위에서 움직입니다.




 


레지스터의 위치나 크기는 물론이고 다이얼의 크기, 핸즈의 길이, 케이스 모양, 푸셔의 위치와 튀어나온 길이까지 모듈을 벗어난 요소가 없었습니다. 무브먼트라는 기술적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집요하게 질서를 구연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덕분인지 60년 가까이 된 디자인인데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습니다.


가운데 레지스터 아래쪽엔 보이지도 않게 작은 글씨로 T-Swiss표시가 있어 야광은 트리튬인 것 같고, 벌써 20년이 넘다 보니 노란빛이 돌기 시작합니다.



 

무브먼트는 Lemania 1873입니다. 파워리저브는 약 40~45시간이고 용두를 50번 정도 돌리면 풀와인딩 됩니다. 좋은 크로노무브는 리셋할 때 바늘이 12시에 가까운 방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이 시계도 30초 전에는 반시계방향, 30초가 넘어서는 시계방향으로 리셋됩니다. 케이스백을 열어보면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째깍째깍 돌아가는 모습이 참 예쁘지만 평소엔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네요.



 

 

 

다이얼 가장자리에는 1/100분을 표시하는 Decimeter가 새겨져 있습니다. 69년까지 제작된 호이어 까레라에서는 타키미터, 펄소미터, 데시미터, 눈금 없는 다이얼까지 4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검정 다이얼에는 데시미터버전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 모델은 과거의 재현이라기보다는 레퍼런스의 연장선에서 빈자리를 채워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데시미터에 대해 찾다 보니  Decimal time이라고 해서 프랑스혁명 때 12진법, 60진법을 쓰고 있는 시간체계를 10진법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에 맞게 만들어진 시계도 있고 1년간 시행되기도 했었는데, 문화적 저항과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고 하네요.


3.78분과 같은 표기는 주로 공학자나 과학자들이 많이 썼다고 하며, 실제로 데시미터가 표시된 까레라의 상당수는 실험실에 장비를 공급하던 Fisher Scientific을 통해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4번에 걸쳐 1964 Heuer Carrera Re-edition cs3111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오리지널 까레라 디자인은 1963년, 모더니즘 디자인의 세례를 받아 완벽한 비율을 가진 레이싱 크로노그래프로 탄생했지만, 1969년 오토매틱 크로노그래프의 등장으로 디자인이 바뀌었고, 쿼츠파동의 결과로 1985년 까레라라는 이름조차 사라졌으나 1996년 전략적인 목적으로 부활하여 태그호이어를 구원한 뒤 최근에도 복각되어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까레라를 살펴보면서 제가 유독 60년대 시계들에 끌리는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60년대는 디자인과 기술이 곧 마케팅인 시대였고 그만큼 시계에 집중했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계 중 지금도 접할 수 있는 것들은 그 긴 세월 동안 기술의 변화나 시장의 변화 속에서도 가치를 검증받아 채에 걸러진 생존자들입니다. 즉, 요즘 같이 광고다 마케팅이다 현상만 범람하는 시대에 가장 본질에 가까운 매력을 느낄 수 있기에 끌리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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