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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it Jan 01. 2024

스티브잡스의 시계 III

세이코 샤리오(3) : 왜 하필 이 시계였을까?




스티브 잡스는 물건 선택에 굉장히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집에는 자신이 감탄할 수 있는 디자인의 물건만 놓기를 원했고, 최소한의 필수품을 제외하고는 가구도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혼하고 아내와 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구를 들이는 데에는 8년 동안의 토론이 필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그의 까다로운 디자인 취향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선불교’와 ‘바우하우스’가 나타납니다.


그가 젊은 시절 선불교와 타이포그래피에 빠져있었고, 젠(Zen) 스타일의 일본 디자인이 유럽으로 전파되어 바우하우스의 Less is more에 영향을 미쳤으니 어찌 보면 하나의 일관된 디자인 철학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잡스가 샤리오를 선택한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잡스가 세이코 샤리오를 구매한 건 매킨토시에 장착할 소니의 3.5인치 디스크드라이브를 구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한 1983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이 시계는 1982년에 출시되었고, 일본 내수용으로만 판매되었으며, 팸플릿을 보면 1983년과 1984년에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계의 케이스는 지극히 일본적입니다. 


디자인적 계보는 없어 보이는데, 일본 다도에 사용하는 용기를 빼닮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외국인들이 일본 문화를 처음 접했을 때 받는 인상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일본 문화에 빠져있던 잡스의 눈에 들어오는 요소였지 않았을까 합니다.



반면, 다이얼은 지극히 바우하우스 스타일입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이 시계에 등장한 건 1937년 랑에와 스토바였고, 이후 독일의 플리거들이 이 철학을 따랐지만 2차 대전 패전 후 명맥이 끊겼습니다.





전후 1950년대에 바우하우스 출신인 막스빌이 융한스와 제작한 주방시계 디자인이 바우하우스 스타일을 새롭게 되살리는데, 1961년에는 손목시계로도 만들어졌고, 샤리오는 이 스타일을 따르고 있습니다.




아마 당시는 쿼츠파동의 정점으로 세이코가 제럴드 젠타를 비롯한 유명 디자이너들을 모두 고용할 수 있었던 때라 자연스럽게 유럽 디자인이 세이코의 컬렉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잡스의 시계가 경매로 널리 알려졌을 때 디터람스의 다이얼 디자인을 베낀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연도를 확인해 보니 그가 디자인한 브라운이 아날로그시계는 1989년에 출시됐고 샤리오는 그보다 7년 앞서있으니 순서는 반대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브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때 디자인 전권을 위임한 조나단 아이브가 가장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디터람스였고, 샤리오 디자인에서 디터람스를 연상했다는 걸 보면 잡스의 취향에 확실한 일관성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지금 봐서는 문방구에서 파는 수능시계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이 저비용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한 것이니 어찌 보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 


그래도 케이스만큼은 다른 시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계는 뭔가를 또는 누군가를 기념하기에 좋은 물건입니다. 


이 시계는 가치는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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