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갠지스강의 물이라도 인간에게는 물로 보이지만, 물고기에게는 보금자리로, 아귀(餓鬼)에게는 불로, 천인(天人)에게는 감로로 보인다는 뜻이다. 같은 대상이라도 보는 이의 경애(境涯)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비유로 나타냈다.
경애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생명에 쌓아온 업인(業因)으로 만들어진 그 사람만의 인식의 범위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조건에서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견딜 수 없는 불행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보는 사람의 경애에 따라 변하므로, 나 이외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할 수 없다. 자신의 경애가 바뀌면 살고 있는 세계 자체가 바뀐다.그 생명의 기저부(基底部)를 바꾸는 것이 불교이고 경애혁명이다.
나는 결혼 대상자의 조건으로 사랑과 더불어 '존경'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친정엄마를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으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엄마와는 달리 당시 나의 아버지는 사범대를 나와 중등학교 교사로 계셨다. 그 시절엔 대부분 그랬듯이 엄마는 남편을 하늘로 여기며 존경하고 떠받들었다. 우리는 보리밥을 먹어도 아버지를 위해선 늘 하얀 쌀밥을 종지에 퍼서 뜨끈하게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두곤 했다. 어린 나의 눈에는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으려면 결혼할 사람에겐 사랑과 더불어 무엇보다 '존경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시절 학과장실 문을 열면 항상 조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백과사전처럼 크고 두꺼운두덴(Duden) 사전을 펼쳐놓고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온종일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앉아 책을 보는 그의 끈기와 학문에 대한 열정은 내게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정의가 아니면 설사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옳은 말을 해야 하고, 술을 마실 때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좋아하는 호탕한 그의 성격에 반해서 결혼했다.
그 존경심은 어디로 갔을까. 우습게도 그 마음이 사라지는 데는 결혼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솔직하고 직선적이며 술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은 모두 상처로 돌아왔다. 교직에 있으면서 점점 더 권위적이 되어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고백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게 고통이었다. 내 결혼생활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에 대한 존경을 되찾을 수 있을까.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어디든 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때 나를 흔들어 놓은 것이 불경보살의 한 마디였다.
我深敬汝等 不敢輕慢 所以者何 汝等皆行菩薩道 當得作佛
아심경여등 불감경만 소이자하 여등개행보살도 당득작불
"나는 그대들을 깊이 존경하고 경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모두 보살의 수행을 하면 반드시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법화경 상불경보살품
항상 어느 누구를 만나든 차별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예배했기 때문에 그를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라 불렀다. 아무리 욕설과 비난을 받고 박해를 받아도 그들을 향해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하며 예배했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다해, 몸으로 <법화경>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입으로 <법화경>의 가르침을 설하고, 마음으로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깊이 간직했기에 육근청정(六根淸淨)의 과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 불성(佛性)이 있다는 법화경의 가르침을 나는 단지 머리로만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나는 겉모습에 속아 그의 안에 있는 불성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거울을 보고 예배하면 거울 속의 나도 나를 보며 예배한다는 오래된 금언이 떠올랐다. 내 시선이 이미 그를 경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모든 모습이 그 굴절된 거울에 반사되어 비치고 있었다. 그는 불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이미 충분히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학자이기에, 유명인사가 되었기에 외부적인 조건으로 그를 존경한다면 그것은 언제든 무너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가 불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수행으로 반드시 인격완성을 이룰 수 있는 한 인간이기에 그를 존경한다면 그것은 변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불경보살은 그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서야 가슴속에서 기쁨이 샘솟았다. 잊고 있었다. 처음 법화경을 만났을 때의 환희를. 내 시선이 달라지니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요소로 바뀌었다. 물론 그의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로 인해 내가 깊이 상처를 받거나 좌절하지 않게 되었다. 내년이면 결혼 40주년이 된다. 그는 아이들이 인정할 만큼 부드러워졌고, 항상 변함없이 웃음을 잃지 않는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알까. 나의 미소는 나의 끊임없는 투쟁이고 환희라는 것을.
"나마스떼(Namaste)"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사말이다. 인도나 네팔 등에서 만날 때나 헤어질 때 주고받는 인사말로, 산스크리트어로 '당신을 존중합니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게다가 단순히 상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깊은 '내면의 마음자리'를 의미한다고 하니 이토록 아름다운 인사말이 있을까.
네팔이 히말라야 산맥 남쪽의 험준한 산악국가라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것도 그런 문화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