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이상 1

by zena

한쪽 벽면으로 머리 쪽을 붙인 침대만 방 한가운데 놓여 있다. 사람의 흔적은 구겨진 짙푸른 색 시트에만 느껴지고 방안은 고요하다. 그녀에게 알람 같은 건 필요 없다. 언제나 동이 트기 전 일어나 반쯤 감긴 눈으로 밖으로 나간. 오랜 습관이다. 거실과 이어지는 부엌은 원목과 미색 빛으로 꾸며져 있다. 거실엔 5단짜리 자작나무 원목 책장이 TV가 있을 법한 벽면에 짜여 있고 그 앞으로 긴 타원형 책상과 마찬가지로 긴 의지가 거실 창을 보고 놓여 있다. 책상과 의자 모두 집성목으로 다리 부분은 철제로 조립되어 있다. 부엌은 상부 장 없이 시야가 탁 트여 있다. 음식을 해 먹지 않는 것인지 워낙 깔끔한 것인지 이렇다 할 조리도구나 집기류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드립 포트와 서버, 드리퍼, 전동 그라인더가 열을 맞춰 놓여 있고 가게 상호가 크게 박힌 원두 봉지가 어째선지 단단히 봉해져 있지 않고 입구가 열린 채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역시 유명하다는 카페에서 사 온 원두는 죄다 맛이 없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오히려 집 앞에 몇 개나 되는 카페에서 혹은 온라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원두들이 훨씬 시큼하고 묵직하다고 매번 느낀다. 그러나 그녀는 굳이 매주에 한 번 또 다른 유명한 카페로 가 원두를 사 온다. 이것 또한 오랜 습관이므로. 커피를 내리는 일은 그녀의 일이 아니고 그의 일이지만 언제나 그녀에게 그가 있는 건 아니므로 오늘은 그녀 스스로 밤새 향과 맛을 날린 원두를 그라인더로 갈고 드립을 한다. 밖은 고요하다. 그녀는 기다리지 못하고 속도를 내 커피를 내린다. 원두에 거품이 부글거린다. 받침이 있는 커피잔을 들고 긴 의자 끝에 앉아서 해가 뜨는 걸 본다. 새하얗게 쌓인 눈에 볕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이런 시대에 쌓인 눈을 볼 수 있다는 건 지나친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운을 누린다. 차들이 도로를 따라 움직이고 사람들이 한두 명씩 어딘가로 걸어간다. 때론 멈춰 빚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쌓인 눈을 만지기도 한다. 그녀는 창을 열어 서 있는 사람을 더 자세히 본다. 그가 아닐까, 아니라면 저 사람은 누굴까. 그런 생각 따위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결국 알아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 그녀는 지금 가장 좋아하는 일을 커피와 함께 즐기는 중이다.

늘 하던 일을 잊지 않는 것도 그녀가 잘하는 일이지만 하지 않는 것 또한 그녀가 잘하는 일이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곧장 달리기 하거나 근력운동을 하러 센터에 갔을 테지만 오늘은 하지 않는다. 검은색 면바지와 셔츠, 무릎까지 오는 짙은 회색 코트를 걸치고 10인치 정도의 숄더백을 든다. 작은 수첩과 볼펜 몇 자루, 카드 몇 장과 휴대전화가 전부일 테니 무겁진 않다. 운전은 하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한다. 코트가 아닌 점퍼를 입었어야 했다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몇몇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만 이내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그 옆 사람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러다 그 옆 사람으로 또 그 옆 사람에게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바라보면서 그녀는 그녀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 걸까. 언제라도 도착할 수 있는 그녀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ㆍ이미지 출처 ㅡhttps://m.blog.naver.com/wlsqls37/223657666538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