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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Aug 31. 2020

어느 날 주정뱅이 섭섭이가 말했다

 남자 사람 친구 섭섭이. 내가 스무 살 때 스물하나였던 그에게 난데없이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라며 일방적인 친구 선언을 한 나를, 그는 좋아했던 것 같다. (아니라면 가소롭다 싶었겠지) 조용하지만 할 말은 수줍게 끝까지 하는 내 친구 섭섭이는 드럼도 치고 밴드 활동도 하고 글도 쓰고 동시도 짓고 영화도 공부하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최근엔 젬베까지 섭렵하며 우당탕탕 활동 중이시다. 오토바이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돈은 없어도 오토바이는 늘 있다. 그의 꿈 중에 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것인데 이상형의 조건도 함께 오토바이 타며 여행길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불면증이 깊어서 술을 마시는 것인지, 술을 마셔서 불면증이 깊어진 것인지 여하튼 문인들의 단골 메뉴라 할 수 있는 술을 달고 산다. 한 번씩 연락하면 늘 술에 취해 있거나 술상을 준비 중이거나 해장을 준비 중이다. 저러다 정말 죽는 건 아닌가 싶어 연락을 끊을 수가 없다.     

 

 어김없이 낮술을 거나하게 걸친 섭섭이랑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서로의 신세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던 중 그가 나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푸시업(push-up) 동영상을 봤는지 갑자기 한다는 말이, 팔꿈치만 냅다 접었다 폈다 하면 운동이 되냐- 였다. 평소에도 우린 서로에게 충고를 가장한 스트레스 해소를 해왔으며 서로의 안부를 대신하여 걱정과 연민을 무작정 해댔기에 크게 걸리는 말도 아니었다. 섭섭이도 딱히 내 푸시업(push-up)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싶었다기보다 제 눈에 보이는 대로 되는대로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푸시업(push-up)은 스치듯 지나갔고 얼마 동안을 서로의 대한 충고와 욕과 헛소리를 반복하다 기약 없는 만남을 굳이약속한 채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속이 상했다. 자꾸만 나의 팔꿈치가 떠올랐다. 내가 아무리 못해도 그 정도인가 싶고 눈으로 봤나 뭘 안다고 지껄이나 싶기도 하고. 코로나로 운동센터에 나가질 못하니 대안으로 이것저것 열심히 시도하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 너는 정말 무지렁이가 아닌가 하며 혼자 혀를 끌끌 차며 성을 냈다. 가라앉히려 되지도 않는 심호흡을 해보아도 마음은 여전히 부글거렸다. 찔렸던 거다. 알고 있었다.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매일 업로드는 해야겠고, 해도 해도 단번에 늘지는 않고 죽을 만큼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깨작깨작 해대고 있었던 나를 들킨 것이다. 푸시업(push-up)뿐만이 아니라 자꾸만 힘든 척 뭐든 열심히 하는 척 다 아는 척 하는 나를 내가 좋아하는 친구, 일부분 부러운 게 많은 친구, 가림 없이 마음을 기대는 친구가 아는 것만 같아 민망해서다.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 게 부끄러워서다. 나는 정말, 즐거운 독립을 하고 있는 걸까.   

  

 푸시업(push-up) 하나로 많은 것을 들켜버렸다. 나의 쪼잔함이 작용한 것인지 내 일상의 조급함이 끼어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젬베 공연이 취소되어 속상한 그를 제대로 위로해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생계가 걸린 문제였고 즐기며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늘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숨만 쉬고 산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안다. 자꾸만 섭섭이의 술주정이 눈에 어른거려 괜히 그의 인스타를 들락날락해본다. 그래도 굳이 너한테 들키고 싶지 않다. 생일선물로 영화 <원스> 한정판 LP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백수라 핑계 대고 안 사줄까 보다. 내 친구 섭섭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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