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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Jul 12. 2020

이제서야 사랑이라니

나는 늘 나만 사랑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내려지는 정의가 상대적이라는 이유로 늘 나의 방식은 옳았다. 보고 싶으면 보고 만나고 싶지 않으면 보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그저 좋은 것들만 공유하고 불편하고 힘든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함부로 단정 지었다. 길을 걷다가 책을 읽다가, 바쁘게 일에 치이다가, 혹은 가끔 홀로 남겨질 때 문득 심장이 몇 개로 조금 나누어지는 기분이 들거나 어느 겨울 서늘한 칼바람 같은 것이 싸아아악- 하고 깊고 느리게 훑고 갈 때, 이게 사랑인 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 마음을 나는, 부정했다. 내 일상이 더이상 내 것이 아니고 내가 나를 사라져 버리게 하는 그 기분이 불안했다. <떠나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라는 말처럼 <언젠가 너도 내 마음을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을 요즘 문득문득 떠올린다. 아니 떠오른다. 그럴 때면 마음에 정말 불이 붙는 것처럼 재가 될 것만 같이 아프다. 뱉어내면 그저 글자의 뭉텅이 같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음을, 그럼에도 쏟아내야 했던 것임을 나는 알지 못했다.        


 같은 마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나오면 찾아오고 찾아가면 멀어지는 다른 시간 속에 너와 나. 네가 나를 사랑할 때 나도 너를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크기로 잴 수 있다면 손으로 빚을 수 있는 그 어떤 형상이라면 부러 똑같이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름비가 내린다. 혹여 빗물이 튀진 않을까 염려에 가득 차 어두운색 옷을 입고 칙칙한 우산까지 쓰며 오늘을 시작한다. 잔뜩 습기를 머금은 여름의 비는 이상하게 마음을 들뜨게 한다. 찹찹찹- 촉촉촉- 비의 박자와 걸음의 박자가 얽히고 설키며 심장에도 비가 내리고 걸음에도 새겨진다. 오늘만큼은 모든 뿌연 것들 다 내려놓을 수 있다. 꿈, 내일, 너, 그리고 나 같은 것. 하나하나 정성스레 내려놓다 보면 거리에 고인 빗물 속이 관념들로 가득 찬다.


 나는 요즘 부쩍 끝도 없이 타오르는 마음을 누르고 있다. 알아달라는 건 아닌데, 가지고만 있자니 정말 재가 될 것만 같아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그저 말 몇 마디를 어렵게 뱉어본다. 이제서야 사랑을 알아버린 오늘의 내가 우습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그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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