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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Sep 15. 2020

그럴 줄은 몰랐다(1)


어찌 된 일인지 백수가 또 한 명 늘었다.     


 내 친구들은 죄다 백수 아니면 백수 같이 사는 사람들뿐이다. 연극 작업을 하면서 친구가 된 네 살 많은 오빠와는 (형이라 부르던 오빠) 10년이 넘은 우정이다. 사실 우정이라고 말하기엔 오랜 세월, 만나지 않은 시간들이 더 많았다. 각자의 꿈을 좇느라 생활의 속도를 달리하다 보니 일상의 안부조차 묻질 못했다. 그럼에도 일 년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비정기적으로 휴대폰 번호 바꿀 때, 집안 경조사가 있을 때,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싶을 때 등등의 이유로 연락을 이어가다 보니 여태껏 보고 산다. 내가 열아홉이었을 때 스무 세 살이었던 오빠는 정말 잘생겼었다. 그리고 성질도 더러웠다. 인물값 한다는 말이 딱 그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세상의 쓴맛을 정말 가지가지로 겪은 오빠는 서른아홉의 진부한 청, 장년(?)이 되어 있었다. 늘 패기가 넘치다 못해 패대기를 치고 싶을 정도로 당찼던 그가 이젠 무난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지도 않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여자도 이젠 딱히 만나고 싶지 않다면서 스스로를 꼰대라 선언했다.      


다니던 회사의 주인이 회사를 마음대로 팔았단다.      


 회사에 뼈를 묻겠다던 오빠의 계획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래도 구조조정이 들어오기 전까진 악착같이 붙어 있을 거라며 너는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냐며 혀를 끌끌 차던 오빠가 며칠 전 전화가 왔다. 백수 생활을 고백하지 못한 나는 전화 받기를 망설였지만 몇 안 되는 친구의 위로라도 받고자, 전화를 받자마자 나 백수요- 하고 고백했다. 큭큭큭큭- 웃음소리가 들려야 정상인데 나도 백수라는 백수 고백이 이어졌다. 동지가 된 우리는 그다음 날 바로 회동을 가졌다. 얼굴이 많이 안 좋네(?) 라며 우리 사이엔 절대 없던 따뜻한(?) 위로를 건네며 고기를 구워주는 오빠가 멋있었다. 묻지도 않았는데 나는 나의 섣부른 퇴사 결정과 무자비한 취업활동 전선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조금 슬펐다. 아니 많이 슬펐다. 눈물이 나기 전에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얼른 오빠는 왜 갑자기 퇴사를 했냐며 화제를 돌렸다. 내 말엔 대꾸도 않고 LA갈비 소금구이를 추가 주문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열심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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