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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Sep 28. 2020

때.때.때


<때>
사전적 의미로 1.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 2. 끼니 또는 식사 시간 3.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 4. 일정한 일이나 현상이 일어나는 시간 (더 있으나 이하 생략)


 쌉싸름한 가을이 왔고 여기저기서 도로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도 명절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며칠 뒤엔 사랑하는 김여사의 생신이므로 조카들 용돈과 엄마 선물을 위한 물질적 능력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백수의 마음은 한껏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배는 돌아서면 고프고 돌아서면 고프고, 고기가 질려 내일은 다른 걸 해 먹어 봐야지 다짐을 해도 다음날이면 또 맛있는 고기를 먹을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때가 되었다. 어느새 달리기는 5km를 넘어서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 달 뒤쯤 10km 정도는 달릴 수 있다. 내년 봄엔 마스크도 벗고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 달릴 수 있겠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돈을 좀 모으면 운동화랑 운동복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모으는 건 고사하고 구경하기도 힘든 상태니 마땅한 때를 기다려야겠다. 영어공부도 콧물 닦는 수준이지만 평가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느낀다. 생애 처음으로 토익시험에 도전해본다. 과연 신발 사이즈가 정말 나올 것인가가 이번 도전의 관건인데 물론 나오지 않길 바라지만 나의 현재를 안다는 건 발전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므로 과감하게 덤벼보려 한다. 신발 사이즈 나와도 밝히진 않겠다.       


 가장 기다리는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직장생활이 아닌 알바를 하면 글 쓰고 영상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등등등 나의 창조적인 작업의 퀄리티가 더 높아질 줄 알았는데, 그래서 뚝딱뚝딱 뭐라도 나올 줄 알고, 뭐라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삶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과정의 연속임을 글로만 배웠지 몸으로 배우기는 처음이다. 완전한 독립의 때는 언제 올 것인지 과정 속에 있는 나는 가늠할 수 없고 늘 지나고 나서야 아- 여기쯤이구나- 하고 눈치코치로 때려 맞춘다. 몇 군데 면접을 보고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은 곳은 언제나 박봉과 과다업무를 요구했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곳은 언제나 나를 고사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더욱 거세게 올라오는 마음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뭘 좋아하는지조차 몰라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해봐야 했고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고, 비용을 얻기 위해서 또 돈 버는 것에 집중해야 하는, 돌고 도는 생활(투쟁)을 견뎌야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다. 버티다 보면 살짝 미소 정도 지을 수 있는 날들이 퐁당퐁당 오기도 하니까.   

  

 나는 다시 예전 직장으로 돌아갔다. 그곳은 나의 과거가 있고 지나간 사람들이 있고, 극복하지 못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이다. 생계를 위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무척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후퇴는 아닐까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싫은 것도 아니고 계속 머물러 있지도 않을 것이다. 직진이 안된다면 우회로도 있고 버스가 없으면 택시 타면 된다. 지하철도 있고.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상상해본다. 나의 세계를 펼치기 위해 계획도 세운다. 계획들이 행동으로 나아가게끔 스스로에게 힘을 준다. (반짝반짝 빛나거라!!) ...정말 그 ’때’ 가 올까? 온다면, 되도록 빨리 오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유일한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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