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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Oct 04. 2020

고마워, 책갈피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책상 위 시집들이 주말 아침을 열어젖힌다.     


 괜한 욕심으로 다시 펼칠 것도 아니면서 독립할 때 꾸역꾸역 챙겨 온 것들이다. 개중에 좋아하는 시인과 시들이 있어 몇 번씩 본 것들도 있지만 단 몇 권일 뿐이다. 얼마 걸리지도 않을 걸 이렇게 마음의 짐처럼 먼지를 쌓았나 싶어 솔로 살살살 먼지를 털어낸다. 눈으로 시인의 이름들을 훑는다. 몇 번 망설였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뭉텅이로 뽑아낸다. 마음의 살이 아닌 통장의 살이 되길 내심 바라며. 책방으로 출근한다.  

   

 나는 다시 책방지기가 되었으므로. 들고 오느라 무거웠던 시집들을 꺼냈다. 털어낸다고 털어냈는데 앞, 뒤쪽으로도 먼지가 듬성듬성 묻어있다. 정말 짐처럼 가지고 싶었구나 싶어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내 통장의 살도 살이지만 부디 마음으로 소통해줄 사람에게로 가라고 한 권씩 한 권씩 정성스레 닦아 본다. 중고책들은 책 안쪽 상태도 알아야 해서 일일이 본문을 들춰 본다. 혹시 돈이라도 나오면 땡큐고 그렇지 않아도 손이 멈추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작가들의 세상을 훔쳐보는 시간이니 그게 어디든 살로는 갈 것 같다. 툭. 툭. 툭.     

 책을 펼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건 돈도 살도 아닌 책갈피다. 책을 읽을 때 한 권을 완독 하는 게 아니라 쉬어가고 싶으면 잠시 멈추고 다른 책을 읽고, 또 쉬어가고 싶으면 다른 책을 집어 드는 습관이 있어 책을 살 때마다 책갈피는 필수다. 그렇다 보니 어쩌면 당연히 나올 건 책갈피뿐인데도 책마다 떨어지는 책갈피를 보고 있자니 좀 우습기도 하고 갑자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돈 주고 산 것들이 아니라 서점에 가면 나눠주어 하나씩 가지고 온 것들이었다. 딱히 디자인에 눈길이 가는 것도 아니고 잃어버려도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책갈피가 있었기에 생각을 쉬어가고 작가들을 다시 만나고, 또 다른 세계로 발돋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순식간에 고마움이 밀려온 것이다.      


 힘들어도 삶 곳곳엔 고마운 책갈피들이 있다. 다시 책방 일을 하면서 글도 더 가열 차게 쓰고 다양한 콘텐츠를 구상할 시간적 여유도 갖는다. 일적으로 소통할 사람들이 여기에서 오고 저기에서도 찾아서들 온다. 모든 게 조화롭게 에너지가 되어 흐른다. 새삼 따뜻하고 새삼 자신감이 솟아오르며 새삼 눈물겹다.      


 시집 속에 책갈피들을 한데 모으니 수십 장이다. 모아서 전시회를 열어도 되겠네 했다. 그래서 정말 해볼까도 싶다. 언제나 책들이 주인공이었으니 너희들도 너희들의 삶에서 한 번쯤은 주인공이 되어보라고. 그리고 마음속으론, 내가 언젠가 또 멈추고 싶거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싶을 때, 옆에 있어 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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