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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Sep 25. 2020

엄마의 온도 (3)

 결국 그날 나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누구냐고 묻는 내 말에 자꾸만 응응 이라고 대답만 하는 통에 답답해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예고 없이 엄마를 습격(?)했다. 궁금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로 궁금증은 풀어야 했다. 내가 모르는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나의 촉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엄마는 괜찮아 보였다. 아니 좀 밝아져 있었다. 이 기회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시작은 고해성사였다. 내가 불효자다, 딸자식 키워봤자 나 같은 딸이 천지삐까리니 소용이 없다를 시작으로 요새 몸은 어떤지, 맛있는 것도 해 먹고 하라고, 돈이나 주고 그런 소리 할까, 식의 자문자답까지 쏟아내며 엄마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정말 두서없이 기승전결도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말을 던졌다.     


-엄마 요즘 누구 만나나?

-(망설임 없이) 어 

-으응…(머리 회로 고장) 응?응??????     


 솔직히 말하면서도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그렇게 만나라~ 만나라~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빠 같은 사람과 살다 보니 남자에 대한 불신감도 깊었고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 없으니 나이 먹어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저런 생각들은 나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무나 즉각적이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엄마를 보며 나는 멍해졌다. 좋은 사람 있으면 무조건 만나보라고 했으면서, 사실 나는 싫었던 걸까. 순진한 우리 엄마는 더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남자 친구의 신상정보를 술술 불었다. 겉으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실은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마음과 감정들이 자꾸만 올라오는 통에 혼란스러웠다. 이젠 딸들보다 남자 친구가 제일 우선일 엄마의 일상이 그려지니 괜히 심술이 났고 엄마 기분을 맞추려 갖은 알랑방귀를 껴도 미지근한 보리차처럼 뚱한 표정만 짓던 엄마가 뒤늦게 찾아온 사랑 한 번에 방긋방긋한 얼굴에다 기분은 늘 평균 이상, 최고조라니. 당연한데 뭔가 섭섭하다. 남자 친구와 다투는 날에는 기분이 발끝 너머까지 추락하다가도 데이트 한 번에 입꼬리가 지구 뚫고 우주까지 올라가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내가 딸은 없지만 마치 딸자식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행복해? 라고 묻고 싶지만 참는다. 내가 주지 못한 행복에 대한 미안함과 그럼에도 행복한 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 입을 막는다. 부디 엄마의 남자 친구가 엄마의 뜨겁고 변덕스러운 성질을 잘 이겨내고 견뎌내어(?) 오래도록 만났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엄마는 가을 전어를 좋아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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