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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Oct 14. 2020

가족이라는 이름으로(2)

얼어버린 분위기는 나만 눈치채고 나만 느낄 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전혀 궁궐 같지 않은 샤부샤부 집엔 굳이 예약이 필요했나 싶을 만큼 한산했다. 사실 우리 가족 말곤 아무도 없었다. 드넓은 가게가 적막강산이라 여기서 생일 노래라도 부를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뽀얀 소고기를 보자마자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육수가 빨리 끓어오르기를, 소고기가 흐물해지기 전에 입수시킬 수 있기를, 그리하여 부디 내가 호주산을 눈치채지 않길 바라며 오직 육수만을 바라봤다. (사실 호주산이든 국내산이든 고기는 다 맛있다.) 그랬다. 오늘 이 시간은 소고기 육수를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엄마의 생신을 축하해주는 자리였다. 하지만 다들 까맣게 잊은 듯, 입과 손이 바빴다. 야채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넣지 마라. 떡이나 단호박은 미리 넣어놔야 한다. 맥주를 마실 거냐 소주를 마실 거냐. 나도 음료수를 좀 줘라, 마라. 조카들과는 나의 라떼 발언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와는 먼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터라 여- 이후엔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마주 보는 곳에 앉아 있는 엄마는 이상하게도 먹는 둥 마는 둥 언니들과 나를 멀뚱 하게 번갈아 가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입안 가득 소고기를 한껏 넣고서도 쏜살같은 젓가락질로 한 점 더 입에 넣으려다 우연히 엄마와 눈이 마주친 나.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젓가락을 살짝(?) 놓았다.   

  

-엄마 왜 안 먹노? 소고기 좋아하잖아

-응 나이 드니까 별로 안 먹힌다

-그럴 때 더 먹어야지 특히 단백질, 빨리 먹어라     


 마음에 없는 소리도 아닌데 말과는 달리 엄마의 앞접시에 소고기 한 점 얹어주는 센스와 애정도 없이 나는 다시 젓가락을 들곤 정말 말 그대로 가열 차게 소고기를 흡입했다. 결코 못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전투적인 나를 보며 나조차도 내가 왜 그러나 싶었다. 잡음과 무음이 반복되다 어느새 서로에게 조용해져 버린 식사시간, 끊길 듯 말 듯 하게 뱉어주는 웃음소리만이 함께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가족의 식사시간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고요와 적막을 깨고, 갑자기 엄마가 조카들을 향해 속사포 랩을 시작했다.     

-ㅇㅇ이 지금 몇 살이지? 공부는 잘하나? 엄마 말은 잘 듣고? 시험 잘 쳤다고? 친구들이랑은 사이좋게 지내제? 나중에 아빠 엄마 고생시키면 안 된다?! 어쩌고 저쩌고.

-ㄹㄹ이는 지금 축구 하나? 엄마 말 잘 듣고?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엄마 아빠 고생시키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어쩌고 저쩌고.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저 말을 하기 위한 말이었다. 엄마는 타이밍을 엿보다 이때다 싶어 말을 쏟아낸 듯했다. 더 웃겼던 건 조카들도 딱히 대답에 성실하지 않았다. 첫째 조카는 AI처럼 ‘네’를 연발하며 소고기를 먹었고 아무 생각이 없는(?) 둘째 조카는 대답을 할머니가 아닌 자신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둘째 언니)에게 하고 있었다. 엄마 나 말 듣지 않아? 나 이번에 시험 잘 치지 않았어? 다음 순서는 엄마의 딸들. 세 자매에게로 향했다. 이미 몇 번의 통화로 알고 있는 안부를 마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방금 처음 만난 사람처럼 물었다. 일은 잘 되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누구는 이걸 챙기고 누구는 저걸 챙기고, 나에겐 정신을 챙기고 살라며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을 또 했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순간 나는 엄마가 신사임당 코스프레라도 하나 싶기도 했고 한여름 땡볕에 열과 줄을 맞춰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을 몇십 분째 들었던 시절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했다. 절로 눈살이 지푸려졌다. 짜증이 확– 하고 명치끝에서부터 머리 꼭대기를 뚫고 나온 것은 신사임당 때문인가, 교장 선생님의 라떼는 말이야 때문인가.     


나도 모르게 엄마를 똑바로 쳐다 보며 외쳤다. 

-엄마! 그만하고 밥 먹어라 그냥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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