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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Oct 22. 2020

상냥한 적의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향한 호의가 반드시 호의로 돌아와 주길 바랄 때.


 때때로 나조차 겉과 속이 이렇게 다를 때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을 숨기고 웃는 얼굴로 타인을 대하지만, 그런 숨김이 나를 위하면서도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 여겨지면, 그것은 어쩌면 이해받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조금이라도 이해받는다면 상대방은 내게 적어도 불편한 호의 정도는 베푼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안다.       


 그러나 그럴 때가 있다. 유독 오늘은 당신이 내게 따뜻한 애정만, 진실한 마음만 주었으면 할 때. 처음 만나는 자리. 우리는 서로 모른다. 정확히는 상대방은 나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을 안다. 인간적으로 안다는 것보다 그 사람의 신상정보를 아는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게 그 사람에 대한 적당한 호의를 가지게 한다. 그 사람도 그럴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나의 신분 혹은 나의 환경들을 설명한다면 적어도 호의는 가지지 않겠구나 하는 일련의 배경들이 있다. 그럼에도 나와 그 사람 사이엔 채울 것들이 훨씬 많기에 나는 용기를 낸다.      


 불쑥 찾아간 내게 자리를 내어주고 맛있는 커피도 내려준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안부도 묻는다. 애써 밝은 척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을까. 혹은 그것이 내 진심임을 느껴서일까. 묻지도 않은 많은 말들을 해주었고 궁금해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물어주었다. 사람의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 믿어지는 순간이었다. 조금은 딱딱해 보일 정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선뜻 다음을 기약하는 말을 해준 그 사람이 고마워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나도 많은 사람에게 많이 웃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이 지나고 또 그다음 날이 지나고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지만, 그로부터 어떤 신호도 오지 않는다. 나의 하루가 흩어져 버린 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고개를 여러 번 세차게 흔들다 정면을 마주했을 때, 떠오른다. 상냥한 적의.     


 나를 바라보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걱정해주며 웃던 그 사람의 모든 것은 내게 가진 적의로부터 나온 행동임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왜일까. 사실은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나의 오만인 걸까 그 사람의 편견일까. 아니면 주는 만큼 돌려받고 싶었던 오직 나만의 욕심일까.어쩌면 이것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이것은 무수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나의 상냥한 적의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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