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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Jan 10. 2021

일기 쓰는 사람

나는 일기를 썼다.     


 초등학교 입학을 기점으로 강제적 충효일기 쓰기가 시작이었나 그것이 습관이 되어 나는 끊임없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는 친한 친구를 독점하기 위해 교환일기와 우정 일기, 사랑 일기를 똑같지만 제목만 달리하여 썼고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다이어리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사재기와 꾸미기를 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새해가 되어 헌 다이어리를 버리고 새 다이어리를 사려 서랍을 열면 쓰지도 않고 사다 놓은 온갖가지 다이어리가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나는 쓰는 사람이었다. 엄연히 따지고 보면 이때까지의 일기는 일기가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의 일기는 숙제였고, 중학생 때는 놀이였으며 고등학생 때는 그저 사치였다. 소통을 위한 방법이었지만 정작 일기의 가장 순기능이라고 생각하는 자기와의 소통은 늘 부재했다. 20대가 되어 숙제와 의무적인 인간관계, 쓸데없는 소비에서도 해방되자 비로소 나는 나와의 소통을 갈망하기 시작했고, 온전히 나를 위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작고 네모난 백지 위에 써내려  간 내 작은 삶은 진지하고 어설펐으며, 이기적이지만 아름다웠다. 나라는 사람을 내가 지켜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렇게 나의 일기 라이프는 변함없을 것 같았지만, 종이와 연필보다 노트북이 더 가벼워지는 날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옷을 입기 시작했다. 쓰기에서 보기로 옮겨 간 것이다.      


 싸이월드가 시초였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나아가 인스타그램은 나같이 sns와 사진에 익숙하지 않고 흥미 없는 사람도 적응하게 만들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기록이 가능하고 사진과 영상이라는 다양한 콘텐츠로도 표현이 되다 보니 자연스레 흥미가 솟구쳤다. 게다가 그때그때 댓글이라는 피드백도 오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관종(관심종자, 처음엔 부정적인 단어로 많이 쓰였으나 지금은 좋은 의미로 쓰인다고 생각한다)의 삶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일기인가 아닌가. 쓰기에서 보기로 넘어간 일기는 어느새 보여주기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잘 먹고 잘 돌아다니고 잘 지내는지를 알리는 알림판의 용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솔직해질 수가 없었다.     

 

 오늘은 사람 구경도 못하고 우거지상으로 퇴근한다든가 어떤 연유로 자존심이 너무 상해 자존감이 바닥이라는 민낯의 감정들을 드러낼 수 없었다. 전 세계 누구든 나의 책상 앞에서 손가락 하나로 만날 수 있는 sns의 공간이 내게 준 것은 어쩌면 자유보다는 더 많은 결핍이다. 진짜 나를 드러낼 공간. 이를테면 실핀으로 조금 딸깍거리면 바로 열려버리는 작은 네모 공간이 지금 나에겐 절실하다. 일기를 쓰고 싶다. 쓰라리고, 때론 하찮으며 별 것 아닌 낙서로 가득 메울지라도 나를 온전히 볼 수 있는 따뜻한 나의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걸음과 거리, 관계를 제지당하는 이 시대에선 더더욱 찾고 싶다. 우선은 멋들어진 노트와 펜부터 사야지... 하하하.


 *이미지출처-https://m.blog.naver.com/mathscienceinlife/222077096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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