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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Feb 24. 2021

빵 소년(2)


내게도 빵 소년 시절이 있었다.     


 일곱 살 때였던가 우리 가족은 1층에 슈퍼가 있는 3층 주택에 살았다. 잘 먹는 어린이였던 나는 슈퍼에서 과자를 사 먹는 게 일과이자 놀이이자 즐거움이었다. 더우면 덥다고 추우면 춥다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호빵을 사 먹고 안성탕면과 짜파게티를 사 먹었다. 거기다 엄마와 아빠 심부름까지 하다 보니 양념 좀 팍팍 쳐서 거의 내 집 안방 드나들듯 드나들었고 엄마 얼굴보다 슈퍼 아주머니 얼굴을 보는 날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피아노 학원으로 가는 길. 오늘은 치토스를 사 먹을까 빼빼로를 사 먹을까 아니면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스피아민트는 빼고)를 씹을까 크림빵을 사 먹을까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오늘따라 바빠 보이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쯤은 말을 걸어줄 만도 한데 물건 정리를 하시는 건지 알은체도 없이 일을 하고 계셨다. 그런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박히면서 순간적으로 나는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뭘 가져가도 모르겠다고. 모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계산대 바로 앞에 껌들이 줄지어 있고 그 옆으로 짝꿍(맛이 다른 두 가지가 같이 들어있는 캔디류)이 보였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과자가 있는 곳으로 재빠르게 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작은 캔디들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아주 큰 소리로 흔들리는 것만 같아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손이 뒷주머니로 자꾸만 갔다. 주춤주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부자연스레 행동하는 내 모습이 아주머니 눈엔 당연히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나가려는 나를 불러 세운 아주머니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물으셨다.      


-주머니에 뭐 넣었나? 

-… 

-… 피아노 학원에 늦겠다, 어서 가라     


 한참 나를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다시 뭔가를 정리하셨고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뒷주머니에 짝꿍을 꺼내 얼른 계산대에 올린 후 슈퍼를 뛰쳐나왔다. 피아노 학원으로 향하며 내가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과 오늘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번갈아 하면서 희미해진 정신상태를 붙잡으려 노력했다.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가 그날따라 너무 비극적이게 들리면서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방안에 콕 틀어박혀 엄마의 불호령을 기다리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짝꿍의 짝 이야긴 없었다. 평소대로 슈퍼 심부름을 시키는 걸 보면 딸이 도둑질을 한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슈퍼에 가는 것을 피했고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경우엔 부러 멀리 있는 슈퍼까지 다녀왔다. 솔직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언제 슈퍼 아주머니를 만날지 몰라 불안에 떨었다. 한편으론 그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후회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걸어가는 내 등 뒤로 슈퍼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다. 나를 불러 세운 아주머니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선 요즘 왜 슈퍼에 안 오냐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우물쭈물 뭔가 말했으나 말하지 못하고 섰다. 분명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제대로 사과하지 못했고, 그것이 비겁하다는 걸 알았기에 아주머니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또 한참이나 보던 아주머니는 조금 웃으시더니 그런 행동은 잘못된 거라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말하셨다.      


사과하지 못했으나 용서받았다.      


 그날 아주머니가 내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쁜 아이라고 야단쳤거나 엄마를 불러 자식 교육에 대한 훈계를 했다고 해도 나는 반성해야 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무엇이 잘못되었고, 잘못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잘못을 했더라도 사과를 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그 뒤로 내가 다시 슈퍼에 갔는지 아주머니와 예전처럼 다정하게 이야길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슈퍼에서 짝꿍을 훔쳤던 순간과 아주머니가 나를 용서해주었던 순간은 사는 내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커가면서 친구들이 문구점에서 볼펜을 하나씩 훔치거나 분식집 떡볶이 계산에 뻥을 칠 때면 나는 일곱 살의 나로 돌아갔다. 그때를 떠올리며 정말 한 번도 친구들과 같이 볼펜을 훔치거나 떡볶이 계산에 거짓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잡지를 훔쳐 든 빵 소년을 바라보며 나는 그날의 어린 내가 떠올랐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akraka75/222102103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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