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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Feb 26. 2021

빵 소년(3)


따뜻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책방을 하면서 누군가와 부딪치는 일이 생긴다면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풀어나가겠다, 늘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부딪치는 상황에 놓이면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당황하고 흥분하고, 어설픈 행동을 반복한다. 내 눈앞에 한 손엔 빵 봉지를 들고 한 손엔 훔친 잡지를 들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또 머릿속에 부풀어 오른 밀가루 반죽을 가득 담은 사람처럼 당황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되뇌었지만 생각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고장 난 로봇처럼 삐그덕 거리며 한참을 서 있는 사이, 그가 내게로 왔고 나는 준비 안 된 배우처럼 어설프게 말을 뱉어냈다. 


 가져갔냐는 내 말에 순순히 네라고 대답하는 마스크 사이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그도 잘못을 인정한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책방 사장님을 부르려는데 그가 갑자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정당하게 책을 사고 계산을 치르려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화가 났다. 단호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히고 그를 외면한 채 책방 사장님을 찾았지만,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더이상 그와 어떤 이야기도 나누고 싶지 않았고 잘못을 묻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어색하게 우리는 함께 서 있었다.      


 잠시 후 책방 창고에서 사장님이 나오셨다. 나는 곧장 사장님에게로 가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해결하시라 말씀드렸다. 큰소리가 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반성 대신 소란만 일어나는 건 아닐까, 조금은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돌아서려는데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오히려 나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잡지 얼마야     


 용서였을까. 나는 빵 소년이 가고 난 후, 사장님께 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사장님은 그냥 계산만 하고 돌려보냈다고 했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사장님은 내가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 그러는 줄 알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랜 세월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기에 오는 체념이었을까.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되지 않는 건 빵 소년이 아니라 사장님이었다. 적어도 빵 소년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게는 해줘야 한다고, 그래서 책값 대신 잘못한 것에 대한 값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손님과 사장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입이 너무 써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빵 봉지를 흔들거리며 천천히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를 다시 불러 세워서 따뜻하지만 단호하게 그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고 싶다. 도덕적인 말이 아니라 그런 행동은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아끼지 않게 하고, 비겁하게 만드는 거라고 하고 싶다. 하지만 그는 없고 돈만 남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그리고 슈퍼 아주머니도 떠올린다. 혹시나 어떤 날 만나게 된다면 내 입으로 잘못했다고 말해야겠다고, 그다음 아주머니가 쓰다듬어 준 나를 용서하겠다고 생각했다.     


 거리에는 빵 소년도 슈퍼 아주머니도, 나도 없다.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은 날이었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akraka75/222102103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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