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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Feb 27. 2021

선물 받는 마음


 마음에 갖고 싶은 것 하나쯤은 늘 있다. 자급자족의 30대는 갖고 싶다고 다 사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원히 안 사는 건 아니고 늘 목록에 적어둔다. 비싸서 당장 사지 못하는 것, 뭔가 내 돈 주고는 사고 싶지 않은 것, 누가 사주면 좋은 것, 내가 뭔가를 이뤘을 때 보상으로 사고 싶은 것 등등 이유도 다양하고 품명도 구체적이다. 꼭 어떤 브랜드의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거의 매일 혹은 몇 주 적어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지워지는 것들도 있고 끝까지 살아남아 나의 소비욕을 자극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 내게 필요한 것이나 받고 싶은 선물이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일체의 망설임 없이 없다고 말한다. 분명 내 수첩에도 머릿속에도 뚜렷하게 목록화되어 있음에도 나는 단번에 없다고 말한다. 알아주길 바라는 건가 싶기도 한데 굳이 또 그런 건 아니다. 생각이 뇌를 스치지 않고 자동적으로 입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랄까.      


선물 받는 사람의 얼굴은 어떠해야 하는가.     


 며칠 간격으로 이것저것 선물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것들이었고 크게 기뻤으며 나름의 감사를 표현했으나 선물을 주었던 사람들의 솔직한 마음은 나를 놀라게 했다. 도대체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 좋아는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혹시나 취향저격에 실패한 것인가 싶어 선물하는 게 망설여진다고 했다. 조금 많이 미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했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받고 싶은 것과 주고 싶은 것은 반드시 일치하는 않는다는 게 내 평소 지론이다. 그러므로 굳이 내 마음속 목록들을 꺼내 들어 요구하는 것이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것만 같다. 또 선물을 받았을 때 기쁘지만 한편으론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혹은 일부러 이렇게 챙겨주니 나도 뭔가 보답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다 보니 표현이 형식적이거나 서툴게 나온다.     

 

선물은 선물이다.      


 이게 가지고 싶다, 이걸 줘서 고맙다, 선물이니 고맙게만 받겠다- 하고 연습해본다. 이걸 연습하는 것도 우습다 싶지만,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제대로 전달하는 건 어쩌면 선물을 받는 사람의 의무이지 않을까 싶다. 주는 것에 대한 마음, 줄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나는 안다. 그러니 더욱 그 마음을 잘 받아야 한다. 어쩌면 이것 또한 부담감인가 하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오늘 내 수첩의 목록 중 몇 개는 줄었다. 괜히 공간만 차지하는 것 같아서 과감하게 몇 개는 돈 주고 살 테고 자잘한 한 두 개는 옆구리 찔러서 절 받듯이 사달라 할 테고 (이게 과연 선물일까 싶기도 하지만) 적기만 하고 절대 안 살 것 같은 것들은 지워버린다.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이런 거 필요 없다는 말 대신 너무 좋으니까 또 사달라고 답장을 보낸다.    

 

또 사주면 땡큐고 안 사줘도 역시 땡큐다.



*이미지출처

https://m.blog.naver.com/lamour6792/22224717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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